미 육군에 소속된 정보 분석 담당 병사가 중국 측 인사에 매수돼 한미연합훈련 등의 군사 기밀 정보를 넘긴 정황이 미 육군 방첩사령부와 FBI(미 연방수사국)의 공조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법원은 용의자의 이적(利敵)·스파이 행위를 모두 사실로 인정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글로벌 패권을 다투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열강 사이에 치열한 하이브리드전을 치르는 가운데 미군이 중국 측 연계 세력에 매수돼 기밀 정보를 넘겼고, 한반도 안보까지 얽힌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미 법무부는 23일 중국 정부와 연계된 인사에게 매수돼 민감한 군사 정보를 넘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전직 미군 정보 분석가 코빈 슐츠(25)가 법원에서 징역 84개월을 선고받았다고 밝혔다. 그에게는 국가 방위 정보 수집 및 전달 공모, 통제된 정보의 불법 수출, 민감한 국가 정부 정보 제공에 따른 뇌물 수수 등의 혐의가 적용됐고, 지난해 결심 공판에서 유죄를 인정했다.
검찰에 따르면 슐츠는 2022년 5월부터 2024년 3월 체포될 때까지 미군 기밀 문서를 중국 거주 인사에게 직접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인사가 중국 정부와 연계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명확한 징후가 있었음에도 피고인은 돈을 받고 정보를 넘기는 행위를 지속했다고 방첩사령부와 FBI는 공소장에서 밝혔다. 공소장에 기재된 범죄 내역에 따르면 슐츠는 4만2000달러(약 6005만원)를 받고 다음과 같은 군사 기밀 정보를 넘겼다. 대부분 중국·러시아·북한 등 권위주의 진영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내용인데 그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슐츠가 소속됐던 부대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작전 지원을 위해 동유럽으로 배치되기 전에 내려진 명령
·미군이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부터 배워 대만 방어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
·HH-60 헬리콥터, F-22A 전투기,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기술 매뉴얼
·중국 군사 전술 및 인민해방군 로켓군에 대한 정보
·미군이 한국과 필리핀에서 실시한 훈련에 대한 세부 정보
·고기동 포병 로켓 시스템(HIMARS) 및 사드(THAAD)와 같은 미군 위성 및 미사일 방어 시스템 관련 문서
·대규모 전투 작전에서 무인 항공 시스템에 대응하는 전술
미국이 한국에서 진행한 군사훈련에 대한 세부 정보가 매수에 의해 중국 측으로 넘어간 것으로 적시된 것이다. 그 외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 중국과 필리핀의 남중국해 영토 분쟁 등 중국·러시아와 연계된 사안과 관련한 미군의 기밀 정보들도 넘어간 것으로 공소장에 기재됐다.
FBI와 방첩사령부는 공소장에 미군 정보 분석가가 공작과 매수에 넘어간 과정도 기술했다. 슐츠가 민감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부여받은 뒤 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중국 연계 인사의 연락을 받았다. 그는 자신을 ‘지정학 컨설팅 회사에 소속된 고객’으로 신분을 속이고 먼저 슐츠에게 대만 및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미군의 작전 능력 및 활동 계획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의뢰했다. 이렇게 일반적인 관계로 친분을 쌓고 신뢰를 얻으면서 ‘고객’은 슐츠에게는 더 대담한 요구를 했다. 보다 구체적인 군사 안보 관련 매뉴얼, 세부적인 작전 평가, 특정 상황에 대한 군 자체의 평가 같은 내밀한 정보를 요구했다. 미군의 한국 내 훈련에 관한 정보도 이 과정을 통해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정보를 빼내기 위해 슐츠의 손에 쥐어진 돈은 확인된 것만 4만2000달러로 파악됐다. 이렇게 매수된 슐츠는 최소 92건의 기밀 문서를 내려받아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공작이 진행됐을 당시 슐츠는 한반도 등을 관할하는 미 인도태평양 사령부에 배속돼있는데, 슐츠의 동료 정보 분석가까지 포섭하려한 정황까지 확인됐다.
재판에 넘겨진 슐츠는 지난해 8월 법정에서 자신에게 적용된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이적행위에 대한 미 형법의 단죄 수위는 무겁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별로 뜯어보면 국가 방위 정보 취득 및 유출 공모 혐의로 최대 징역 10년, 방위 품목 관련 기술 데이터를 허가 없이 중국으로 수출한 혐의로 최대 징역 20년, 무기 수출 통제법 및 국제 무기 거래 규정 위반 공모 혐의로 최대 징역 20년까지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비교적 가벼운 7년의 형량이 나온 것은 그가 범행을 일체 자백해 일정 부분 형량을 감경받은 것은로 풀이된다.
미 외교·안보 라인 고위 인사들은 이번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중국 측에 매수된 미군의 이적행위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팸 본디 법무장관은 “이 피고인은 미국을 방어하겠다고 선서했지만, 돈을 받고 배신하여 미국의 군대와 군인을 위험에 빠뜨렸다”며 “우리 군을 표적으로 삼는 중국의 노력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을 것이며, 군사 기밀을 유출하는 자는 감옥에서 수년간 복역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카시 파텔 FBI 국장은 “중국은 우리의 국가 방위 정보를 훔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군인은 주요 표적”이라며 “간첩 행위를 근절하고 적대적인 외국 정부로부터 방위 정보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저버린 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렛 콕스 미 육군 방첩사령부 사령관(준장)도 “이 병사의 행동은 개인적인 명예보다 개인적인 이익을 우선시하여 군을 위험에 빠뜨렸다”며 “현역과 예비역 장병 모두에게 의심스러운 접촉이 있을 경우 즉시 보고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