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권투계를 평정했던 전설의 복서 매니 파퀴아오(42)가 고국 필리핀 정치판도 평정할 수 있을까. 필리핀의 국민적 영웅이자 현직 상원의원이기도 한 파퀴아오가 3일(현지시각) 집권여당인 민주필리핀당((PDP-Laban) 대표직 제안을 수락했다고 마닐라 타임스가 보도했다.

1995년 라이트플라이급(48.99㎏)으로 프로복싱에 입문한 매니 파퀴아오(왼쪽)는 14년 뒤 9체급을 뛰어 넘어 웰터급(66.68㎏) 세계 챔 피언이 됐다. 코토의 얼굴에 왼손 스트레이트를 작렬하는 파퀴아오.

이날 파퀴아오는 대표직 수락 방침을 밝히면서 집권여당의 영향력을 활용해 나라를 가난하게 만든 근본적 원인인 부패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원들 앞에서 “우리 당의 5대 지침인 유신론, 진실된 인본주의, 계몽적 민족주의, 사회적 민주주의, 참여 민주주의를 준수하면서 지도부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민주필리핀당은 아킬리노 피멘텔 상원의원이 1982년 민다나오 지역을 기반으로 창당한 창당한 PDP당과 1978년 베니그노 아키노 주니어 전 상원의원이 창당한 라카스 응 바얀(Lakas ng Bayan·마을의 힘이라는 뜻)당이 1986년 합당하여 생긴 정당이다.

2015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대결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매니 파퀴아오. /AFP

파퀴아오는 1998년 WBC(세계복싱평의회) 플라이급(50.80㎏) 챔피언에 오른 뒤 이후 IBF 주니어페더급(55.34㎏), WBC 수퍼페더급(58.97㎏), 라이트급(61.23㎏) 등을 제패하며 당대 최고의 복서로 등극했다. 2010년 수퍼웰터급(69.85㎏) 타이틀을 따내며 사상 처음으로 8체급을 석권한 복서로 역사에 기록됐다. 내전과 가난에 찌든 필리핀인들에게 파퀴아오는 국민적 영웅이 됐다. 그가 경기하는 날은 정부군과 반군이 임시 휴전하고, 여야간 정쟁이 멈출 정도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필리핀 선수단은 올림픽 출전 경험이 없는 파퀴아오에게 기수를 맡길 정도로 그를 국가적 영웅으로 예우해왔다.

2016년 5월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진출한 뒤에도 의정활동 중에서도 링에 올라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그는 범죄자에 대한 초법적 응징으로 인권 탄압 논란을 일으킨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왔다.

파퀴아오가 집권당 대표에 오르면서 필리핀 정가에서는 그를 유력한 잠룡으로 보는 전망 기사들이 잇따르고 있다. 필리핀 대통령선거는 2022년 5월 열리는데, 6년 단임제이기 때문에 두테르테 현 대통령은 헌법을 고치지 않는 한 출마할 수 없다. 두테르테의 후임으로 여당 대표로 도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파퀴아오는 대권 도전과 관련한 언급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CNN 필리판은 3일 “파퀴아오의 첫 상원의원 임기는 올해 말 끝나는데, 그에게는 재선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아니면 더 높은 자리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면서 그의 대권 도전 가능성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