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틱톡, 위챗을 규제한다고 하니 중국이 어플리케이션을 훨씬 잘 만드니까 미국이 두려워하는 것 아니냐고 합디다. 그런데 중국의 혁신이라는 게 전부 응용 상의 혁신이지, 기초과학이나 기초기술 같은 밑바닥 분야는 혁신이 없어요. 어플리케이션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라는 기초 위에서 이뤄지는 응용 기술일 뿐입니다. 기초는 연산 능력, 즉 반도체칩이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은 우리가 발명한 게 아닙니다. 우리 반도체 기술은 (미국에) 20년이나 뒤처져 있어요.”
요즘 중국 소셜미디어에 떠도는 한 강연 영상에서 알리바바그룹 창업자인 마윈(馬雲)은 이렇게 탄식합니다. 틱톡, 위챗 규제가 한참 논란이 되기 시작할 즈음이니까 올해 8~9월 쯤인 것같아요.
마윈은 “국제 과학기술계로부터 차단되면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90나노(nm·1나노는 10억분의 1미터) 수준의 반도체”라며 “이건 인텔이 2004년에 만들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국뽕’에 빠져 있는 중국 내부 여론에 정신 차리라고 찬물을 끼얹은 거죠.
◇“중국 반도체, 인텔 2004년 수준”
마윈은 또 “우리가 인공지능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식당 앞에 로봇 갖다놓는다고 인공지능 분야에서 앞서가는 게 아니다”라고도 했습니다. 알파고처럼 기초 연산 능력과 알고리즘에서 세상을 뒤집을만한 기초를 확보해야 인공지능의 미래 청사진을 그릴 수 있다는 얘기죠.
트럼프 행정부의 강도 높은 반도체 제재에 직면한 중국은 요즘 절망하는 분위기입니다. SMIC 같은 반도체 기업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할 능력이 떨어지죠. SMIC는 16나노 제품을 만드는데, 미국이 거래를 끊으면 이마저도 생산하기 힘듭니다.
마윈은 2년 전인 2018년 ‘반도체 왕국 건설’을 호언하면서 중국 국내외에서 5개 이상의 반도체기업을 인수했죠. 그런 그마저도 중국의 반도체 현실에 절망하고 있는 겁니다.
◇10조원 반도체프로젝트 줄줄이 물거품
시진핑 주석은 2년여 전인 2018년 4월 우한 국가메모리생산기지에 있는 장강메모리 공장을 전격 방문하죠. 생산라인을 둘러본 뒤 “반도체칩은 사람의 심장과 같은 것이다. 심장이 약하면 체력이 강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반도체기술 상의 중대한 돌파를 이뤄내 세계 메모리 과학기술의 최고봉에 올라서라”고 주문합니다.
황제의 한마디에 여러 지방정부가 앞다퉈 반도체 공장 건설 프로젝트에 착수하죠. 합쳐서 10조원이 넘는 돈이 들어가는 20여개의 프로젝트가 쏟아집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프로젝트가 중단됐거나 제대로 자본 조달도 안된 상태라고 해요.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발행하는 주간지 랴오왕(瞭望)은 9월 30일자에 중국 반도체 투자 프로젝트에 대한 현장 르포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한마디로 20여개에 이르는 대부분의 반도체 프로젝트가 붕괴 직전이라고 보도했어요. 제대로 자본금 납입이 안돼 공사대금, 직원 월급을 밀린 곳도 있답니다. 외국 기술 끌어오겠다며 지방정부의 지원을 잔뜩 받아놓고 종적이 묘연한 사기꾼도 있다죠. 당 선전 매체가 이렇게 보도할 정도면 얼마나 참담한 상황인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반도체는 돈 때려부어 되는 것 아냐"
화웨이의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는 시 주석이 우한 메모리 공장 방문한 이후 중국 내 반도체 투자 붐이 일자 “반도체는 그렇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고 정면으로 비판한 적이 있어요. 작년 5월 인민일보, CCTV, 신화통신, 환구시보 등 관영매체들과 가진 집단 인터뷰 때입니다. 그는 “도로 닦는다, 다리를 건설한다, 아파트를 짓는다고 할 때는 돈만 부으면 됐다. 하지만 반도체는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인재가 필요하다. 수학자, 물리학자, 화학자 같은 인재를 때려넣어야 한다”고 했지요.
중국은 지난 7월 공산당정치국회의 당시 14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2021~2025)을 논의하면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반도체 기술을 자체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포함시켰죠. 1600조원 이상의 자금이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하지만 중국내에서조차 회의론이 많아요. 무엇보다 반도체 분야 인력이 70만명이나 필요한데, 실제 인력은 30만명 정도로 절대 부족하다는 겁니다. 중국은 한해 800만명에 가까운 대졸 이상 인력이 배출되지만, 그 중 반도체 분야 인재는 3만명에 불과하다고 해요.
미국에 반도체라는 결정적인 약점을 찔리자 시 주석은 전체주의 특유의 동원체제로 이를 극복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마윈은 탄식하고, 런정페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어요. 중국 내에서는 미국에 지나치게 강대강으로 맞서 결과적으로 중국 산업에 큰 재앙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시 주석 책임론까지 불거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