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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터진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 사건은 세계적인 뉴스거리였죠. 차기 최고 권력자 부인이 영국인 사업가를 유인해 독살하고, 그 남편은 사건을 은폐하려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는 그보다 그의 아들 보과과(薄瓜瓜)의 유학 문제가 더 큰 관심거리였어요.

보과과는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유학길을 떠나 영국의 대표적인 귀족학교인 해로우(Harrow) 스쿨을 다닙니다. 졸업 뒤에는 옥스퍼드대에 진학했고, 이후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로 건너가 공공정책학 석사를 받죠. 유학기간이 총 13년이나 됩니다.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의 아들 보과과. 2012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졸업 사진으로 추정된다. /페이스북 캡처

◇ 보시라이, 아들 유학비 논란에 “전액 장학금 받았다” 대놓고 거짓말

해로우 스쿨은 연간 학비가 5000만원을 훌쩍 넘죠. 여기에 값비싼 영국 생활비까지 감안하면 한해 1억원 정도가 들 겁니다. 중국 지방 당서기의 월급은 중국 돈으로 1만 위안(한화 약 170만원) 남짓이죠. 어디서 이런 유학비가 나왔느냐는 게 의혹의 핵심이었습니다.

보시라이는 그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 격) 기자회견에서 유학비 의혹에 대해 큰 소리를 치죠.

“아들이 유학 가서 페라리를 타면서 호화생활 한다는 건 다 중상 모략이고 허튼 소리다. 유명 사립학교 다니고, 옥스퍼드대 가고, 하버드대 가는 학비가 어디서 나왔느냐는데,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한다. 전부 장학금 받았다.”

이런 장담은 이후 재판에서 모두 거짓말로 밝혀졌습니다. 보시라이가 대련시장을 할 때 뒷배를 봐줬던 스더(實德)그룹 회장 쉬밍이 유학비를 대준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거죠.

입만 열면 미 제국주의를 말하는 중국 최고위층이지만, 자녀 교육과 관련해서는 정말 서방국가를 좋아합니다.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 딸도 모두 미국 유학을 했어요. 두 사람은 보시라이 아들 유학 논란이 벌어지자 부랴부랴 딸들을 귀국시켰습니다. 그 전 지도부도 마찬가지죠. 중국 전현직 장관급 이상 고위 간부 자식 75% 가량이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갖고 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입니다.

중국 최고위층 자녀들의 미국 유학 경력

◇ 환구시보 후시진, 외교부 대변인 화춘잉도 도마에 올라

8년이나 지난 보시라이 사건을 떠올린 건 중국에서 최근 다시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져서입니다. 이번엔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그(이론가)와 선전가를 자처하는 인물들이 도마 위에 올랐죠. 보시라이처럼 유학비 문제가 쟁점이 아니라 이들이 평소 해온 반미 발언과 배치된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요즘 중국 소셜미디어는 진찬룽(金燦榮) 중국 인민대학 국제관계학원 부원장 자녀 미국 유학 문제로 떠들석해요. 그의 아들이 지난 10월 결혼식을 올렸는데, 미국 보스톤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하고 돌아온 게 논란입니다.

진 교수는 공산당 싱크탱크의 일원이면서 그동안 ‘반미 투사’로 불릴 정도로 강도 높은 대미 비판을 해온 인물입니다. 대중강연에서 여러 차례 “아이를 어릴 적부터 미국에 유학보내는 건 아이에게 해롭고 소용없는 일이다” “아이들을 장기간 해외로 유학보내는 것을 권하고 싶지 않다. 좋은 선택이 아니다”고 발언을 하기도 했죠.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 익숙한 ‘내로남불’ 논란이 벌어진 겁니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서는 “일할 때는 반미이고, 생활할 때는 숭미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죠.

이달 초 트위터에 올라온 진찬룽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 아들 결혼식 사진. /트위터 캡처

◇ 중 네티즌들 “일할 때는 반미이고, 생활할 때는 숭미냐”

반미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관영 환구시보의 후시진(胡錫進) 편집장도 지난 8월 베이징에 40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갖고 있고, 아들이 캐나다에 이민을 갔다는 홍콩 언론 보도로 곤욕을 치렀죠. 그는 홍콩 빈과일보의 확인 요청에 “나는 딸만 하나 있는데, 베이징에서 회사 생활한다. 전형적인 가짜뉴스”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인에도 불구하고 소문은 잦아들지 않고 있어요. 홍콩 봉황망의 한 기자는 중화권 언론에 “후시진 아들의 캐나다 이민은 그와 친한 베이징 언론인들로부터 쉽게 들을 수 있는 얘기”라고 했습니다. 코로나 19 사태 이후 중국의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를 이끌고 있는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도 중학생 딸을 미국에 조기유학시켰다는 중화권 매체 보도가 있었죠.

이런 논란이 벌어진 배경에는 최근 격화되고 있는 미·중 신냉전이 있습니다. 진 부원장과 후 편집장, 화 대변인 모두 신냉전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을 대변하는 스피커 역할을 해왔는데, 정작 자신은 몰래 자녀들을 미국 등지로 유학시켰다는 것이죠. 중국에서도 역시 내로남불이 문제입니다.

◇ 586정치인 자녀 유학 논란과 닮은 꼴

우리나라 586 정치인들도 이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청문회 과정에서 아들 스위스 유학비 문제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졌고,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한 논쟁 과정에서 두 자녀의 유학 비용 문제가 불거졌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후원금 유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딸 미국 유학비용에 대한 의혹이 제기돼 해명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요즘 시대에 자녀 유학보내는 일이 무슨 허물이겠습니까? 비용 조달 과정이 투명하고, 평소 소신과 언행에 배치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 일도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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