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김치와 중국의 파오차이(泡菜·염장 채소)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논란을 일으켰던 중국 관영 환구시보가 이번에는 중국 최대 검색 사이트인 ‘바이두’를 인용해 다시 한번 김치 기원 논쟁을 일으키려 시도했다. 중국 관영 매체가 한·중간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구시보는 9일 기사에서 한국 연합뉴스를 인용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중국 검색 사이트인 바이두의 ‘파오차이’ 항목에서 “한국 파오차이(김치)가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항목에 대해 항의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바이두 소셜미디어가 8일 한국 학자들의 글을 인용해 중국의 장차이(酱菜·절임 채소)가 1300년 전 한국으로 들어갔고, 변화를 거쳐 현재의 한국 파오차이가 됐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9일 바이두에서 ‘한국 파오차이’를 검색하면 ‘기원 논쟁’이라는 항목에서 2013년 중국 관영 신화망 기사를 인용해 “기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파오차이는 중국 유가 문화의 흔적”이라며 “삼국시대 중국에서 전래됐다”고 돼있다. 해당 기사는 한국과 중국이 단오절의 기원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과 관련해 김치 논쟁도 다뤘다.
환구시보는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AT) (전임) 중국본부장인 정운용씨가 한 기고글에서 1300년 전 한국 삼국시대에 중국의 절임 채소가 한국에 전래돼 한민족의 식습관과 함께 발전해 한국 김치가 됐다고 했다”며 김치의 중국 기원설을 강조했다. 바이두 백과 역시 8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 전 본부장이 ‘파오차이(김치), 한국의 대표 전통 발효식품’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며 이를 근거로 내세웠다.
중국 논문 검색 사이트에 따르면 해당 글은 2002년 ‘쓰촨 식품과 발효’라는 정기 간행물에 실려있다. 한국 김치가 2001년 국제표준(codex standard)을 받았고 1988년 서울 올림픽, 1998년 프랑스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 등을 통해 사랑받았다고 김치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김치에 대해 1300년 전 중국에서 전래됐다는 설명이 들어있다. 이에 대해 정 전 본부장은 본지 통화에서 “한국 김치의 우수성을 홍보했지만 중국 학술지에 그런 내용을 기고한 적은 없다”고 했다.
중국 검색 사이트인 바이두는 통상 특정 주제에 대해 일반인들이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 파오차이’(김치) 항목은 일반 네티즌이 마음대로 수정할 수 없도록 ‘잠금’으로 처리돼 있다. 또 서경덕 교수가 김치 중국 기원설에 대해 항의했다는 내용도 주석으로 달려있다.
환구시보는 최근 중국 파오차이가 국제표준화기구(ISO)의 표준 인증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도하며 김치 종주국인 한국의 ‘치욕’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하지만 중국이 ISO 인증을 받은 파오차이는 한국의 김치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규정한 내용 등을 무시한 일방적 보도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인 RM(본명 김남준)이 한·미 양국 우호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밴플리트상 수상 소감에서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우리는 양국(our two nations)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고 한 발언을 놓고 “중국군의 희생을 무시했다”며 맨먼저 문제를 제기한 매체 역시 환구시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민족주의적이고 선정적인 보도로 논란이 돼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본인의 책상 위에 있는 신문 중 하나라고 언급하며 최근 몇년간 사세를 확장했다. 중국과 입장이 다른 국가나 인물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모욕적 표현을 쓰기도 한다. 환구시보의 자극적인 보도를 한국 언론이 인용해 보도하고, 환구시보는 이를 재인용하며 양국에서 논란을 키웠다.
한국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를 배치하자 2017년 사설을 통해 “사드 배치를 지지하는 (한국) 보수주의자들은 김치만 먹어서 멍청해진 것이냐” “사드 배치 완료 순간, 한국은 북핵 위기와 강대국 간 사이에 놓인 개구리밥이 될 것” “한국인은 수많은 사찰과 교회에서 평안을 위한 기도나 하라”고 해 논란을 일으켜 주중한국대사관이 항의하기도 했다. 후시진 환구시보 편집인은 중국과 호주 관계가 악화되던 지난 5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호주는 항상 소란을 피운다. 중국의 신발 밑에 붙은 씹던 껌처럼 느껴진다. 가끔 돌을 찾아 문질러줘야 한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