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올라온 테니스 스타 펑솨이(彭帥·35)의 글이 중국 정국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시진핑 집권 1기 최고지도부의 일원이었던 장가오리(張高麗·75) 전 부총리와 불륜관계였다는 걸 폭로했죠.

이 글은 2일 밤 10시7분에 올라왔는데, 20분 만에 삭제됐습니다.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와 장가오리 전 상무 부총리. /WTA, 중국신문망

◇홍콩 서점 관계자들이 실종된 이유

최고 권력자들의 여자관계는 늘 화젯거리죠. 마오쩌둥은 4번 결혼을 해 6남4녀를 뒀습니다. 그러고도 혼외 관계를 맺은 여인들이 적잖았죠. 장쩌민 전 주석 역시 애인이 많았습니다. 같은 기관에 근무하던 부하 여직원, 여가수, TV 앵커 등의 이름이 줄줄이 나와요.

시진핑 주석도 예외가 아닙니다. 2015년 홍콩 서점 관계자 실종 사건은 이 서점에서 내려 했던 ‘시진핑과 그의 연인들’이라는 책 때문이었다고 하죠.

그런데 이런 얘기들은 대부분 소문에 그칩니다. 권력자와 관계를 맺은 여성들은 그로 인한 혜택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다, 보복이 두려워 입을 열지 않죠. 공안 당국도 입단속을 합니다.

펑솨이의 글이 파문을 일으키는 건 불문율처럼 숨겨져 온 권력자의 성추문이 소셜미디어 상에 공개됐기 때문이죠.

중국 가요계의 황후로 불리는 여가수 쑹주잉(宋祖英). 베이징 정가에서는 1990년대부터 장쩌민 전 주석과 쑹주잉의 염문설이 나돌았다. /웨이보

◇은퇴 후 다시 만나 성관계 요구

글은 1700자에 이르는 장문인데, 장가오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돼 있습니다.

펑솨이는 10여년 전 장가오리가 톈진시 당서기를 맡고 있을 때 함께 테니스를 한 뒤 그의 집으로 갔는데, 거기서 장가오리의 요구로 성관계를 맺었다고 해요. 그 이후 장가오리가 상무위원으로 승진해 베이징으로 가면서 펑솨이에게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랬던 장가오리가 은퇴 직후인 2018년 다시 인편으로 연락을 해와 베이징 캉밍호텔에서 함께 테니스를 하자고 했다고 해요. 그래서 장가오리 부부와 함께 테니스를 하고 그의 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는데, 여기서 장가오리가 또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게 글의 주요 내용입니다.

펑솨이가 11월2일 밤 중국 소셜미디어에 올린 폭로 글. 1700자의 장문으로 된 글의 일부분이다. /웨이보

펑솨이가 울면서 거부하자 장가오리는 온갖 말로 설득했다고 해요. “우주는 너무너무 크고, 지구는 모래알 하나일 뿐이다. 부담스러운 생각을 버려라” “7년간 너를 잊은 적이 없다.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등의 말이었다고 해요. 결국 이전에 좋았던 감정이 떠올라 다시 관계를 가졌다는 겁니다.

방에서 성관계를 맺을 때 장가오리의 부인 캉제(康潔)가 밖에서 지키고 서 있었다고 해요.

◇”수양딸이라면 이런 관계 강요했겠나”

두 사람은 이후 3년간 불륜관계를 이어왔다고 합니다. 함께 당구, 테니스를 했고 중국 역사를 얘기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밀회 때는 펑솨이의 어머니가 그를 중난하이(中南海·최고지도부 집단 거주지) 서북쪽 시선쿠(西什庫)성당까지 데려다 주고, 거기서 장가오리 집안의 관용차로 갈아타고 중난하이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런 관계가 그렇듯이 펑솨이가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하는 문제를 얘기했던 것으로 보여요. 그에 대한 장가오리의 대답은 “이런 위치(최고지도자)에 있는 사람은 이혼할 수 없다. 다음 생에는 젊은 나이에 만나 결혼하자”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장가오리의 부인은 남편 앞에서는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지만, 장가오리가 없을 때는 펑솨이를 조롱하고 냉소했다고 해요.

펑솨이가 장가오리 저택으로 갈 때 관용차를 탄 지점으로 언급한 베이징 시선쿠성당. 중난하이에서 불과 수백미터 떨어진 곳이다. /웨이보

두 사람은 결국 10월30일 대판 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11월2일 장가오리 집에서 만나 다시 얘기를 해보자고 했는데, 장가오리가 그 일정을 계속 미뤘다고 해요. 이 과정에서 펑솨이는 자신이 ‘갖고 놀다가 불필요하면 버리는 노리개’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결국 본인 말대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인 것을 알면서도 이번 폭로를 감행했다는 겁니다.

펑솨이는 윔블던, 프랑스오픈 등에서 우승하면서 세계 테니스 복식 랭킹 1위에 오른 적이 있는 중국의 테니스 스타입니다. 후난성 출신이지만 톈진 테니스팀 소속으로 활동해왔죠.

글을 보면 그는 장가오리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장가오리에게는 40살 아래인 펑솨이가 노리갯감일 뿐이었죠. 펑솨이는 “내가 당신 수양딸이라면 이런 관계를 강요하겠느냐”고 물은 적도 있다고 합니다.

◇시 주석 장기집권에 유리한 카드

펑솨이의 글은 묘한 시점에 나왔어요. 11월8일 19기 중앙위원회 6중전회를 6일 앞두고 공개가 됐습니다. 6중전회에서는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염두에 둔 세번째 ‘역사 결의’가 예정돼 있죠.

장가오리는 시 주석의 정적인 장쩌민 전 주석 쪽에 속한 인물입니다. 산둥성 서기 시절 장쩌민이 태산을 방문하자 이틀 동안 태산을 봉쇄할 만큼 충성을 다해 상무위원 자리까지 올랐죠. 그 때문에 시 주석 쪽에서 폭로를 부추긴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2018년 펑솨이가 장가오리 부부와 함께 테니스를 쳤다는 베이징 캉밍호텔. 자금성의 동북쪽에 있다. 중국 은퇴 간부들을 위한 위락시설이다. /베이징관광망

하지만 펑솨이의 글이 소박하면서도 진솔하고, 폭로 경위도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어 그랬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이번 사건은 시 주석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 같습니다. 반면, 시 주석 장기 집권 저지가 목표인 상하이방으로서는 입지가 좁아지겠죠. 사실상 권력자가 어린 여성을 농락한 사건인 만큼, 시 주석이 제대로 문제 삼겠다고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