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현지 시각) 영국 런던 최고 번화가 옥스퍼드 스트리트는 을씨년스러웠다. 의류 매장, 미용실, 헬스장 출입문은 ‘정부의 새 지침에 따라 휴업한다’는 안내문이 걸린 채 닫혀 있었다. 크리스마스 쇼핑을 위해 쏟아져 나온 시민들로 각 상점 앞마다 줄이 길게 늘어섰던 전날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20일 오후(현지 시각) 영국 런던 시내 옥스퍼드스트리트 모습. 코로나가 확산되자 전날 영국 정부는 런던과 주변 지역에 실질적인 봉쇄령을 내리고 "집에 머무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해인 특파원

크리스마스는 포기할 수 없다며 방역을 완화하겠다던 유럽 각국이 코로나 재확산에 크리스마스 봉쇄로 속속 방향을 틀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20일 0시를 기준으로 런던 및 주변 지역에 긴급 봉쇄를 단행한다고 발표했다. 비필수 상점은 문을 닫아야 하고, 시민들의 이동은 제한된다. 식당은 포장·배달만 허용된다.

유럽의 성탄절, 올해는 강제로 ‘고요한 밤’

당초 영국은 23일부터 닷새간 3가구가 모여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는 수준으로 방역을 완화하기로 했는데, 하루 3만명 안팎 확진자가 나오자 방침을 바꿨다. 런던 등 일부 지역에선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다른 집에 사는 직계 가족과의 모임이 제한된다. 존슨 총리는 “기존 바이러스보다 감염력이 70% 강한 변종 바이러스가 번져 우리는 계획했던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없다”며 “바이러스가 공격 방법을 바꿔 우리도 방어 방법을 변경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봉쇄에 따라 영국 최대 쇼핑 축제인 복싱데이(Boxing Day)도 올해는 사라진다. 복싱데이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26일을 말하는데 유통 업체들은 이날 재고 정리를 위해 대폭 세일에 들어가고, 영국인들은 새벽부터 백화점 앞에 줄을 서 쇼핑한다. 직장인 켈리 프라이스(36)는 “생애 최대 우울한 연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독일 서부 본의 '별의 거리'라 불리는 쇼핑 거리 슈테른스트라세가 16일(현지 시각)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봉쇄 강화 조치로 인적이 끊긴 채 텅 비어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스위스 정부도 18일 나란히 기자회견을 열고 크리스마스 봉쇄령을 발표했다. 이 기간 모든 음식점, 술집은 폐쇄되고 시민들은 식료품 구입과 응급 상황 외에는 외출이 전면 제한된다. 지난 15일부터 저녁 8시 이후 통행 금지를 실시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도 3차 봉쇄설이 나오고 있다. 독일은 16일부터 전면 봉쇄에 들어간 상태다. 18일 하루 유럽의 코로나 사망자는 5465명으로, 미국(2794명)의 배에 가까웠다. 하루 신규 확진자(19일 기준)도 유럽이 20만3730명으로 미국(18만9650명)을 넘어섰다.

英, 감염력 70% 강한 변종 코로나 확산… 독일·프랑스 등 5國, 영국발 비행기 막아

영국 런던과 남동부 지역에서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이 변종 바이러스는 기존 바이러스보다 감염력이 70%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맷 행콕 영국 보건장관은 20일(현지 시각) 영국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out of control)이 됐다”며 “이 바이러스가 얼마나 빨리 퍼지느냐에 따라 사태 진정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영국 과학자들은 변종 코로나가 지난 9월 말 처음 나타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분석 결과에 따르면 변종은 기존 바이러스보다 전파 속도는 빠르지만 더 심각한 증상을 유발하거나 백신 효력을 약화하지는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변종은 기존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단백질에 변이가 일어나 인체 세포에 더 쉽게 침투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초기 결론이다.

영국 정부는 최근 변종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하자 20일 0시를 기해 런던과 남동부 지역의 코로나 대응 단계를 4단계로 높이고 긴급 봉쇄조치를 단행했다. 영국과 인접한 유럽 국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BBC는 20일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이 변종 코로나 유입을 막기 위해 영국을 오가는 비행기와 기차편을 막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이날 “(문제 해결을 위해) 영국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