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선거를 앞둔 러시아의 한 지방 의회 선거구에서 이름이 똑같은 후보가 3명 출마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중 두 후보가 최근에야 개명한 것이 알려져 푸틴 정권의 야권 후보 당선을 방해하기 위한 정치 공작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조선DB

19일(현지 시각) 러시아의 탐사 취재 신문 ‘노바야 가제타’는 러시아 제2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의회 제2 선거구에 ‘보리스 비슈녭스키’라는 이름과 성을 쓰는 후보가 3명 출마했다고 보도했다. 가장 먼저 지난 5월 등록한 후보는 중도 성향 야당 ‘야블로코(사과)’ 소속 현역 시의원이며, 무소속인 나머지 둘은 이달 등록을 마쳤다. 비슈녭스키 시의원은 같은 달 치르는 연방 하원(두마)에도 출마했는데, 나머지 ‘비슈녭스키’ 중 1명도 그를 따라 같은 지역구에 후보 등록을 했다.

비슈녭스키 시의원은 “유치한 장난으로 표를 분산하려는 음모”라며 반발했다. 푸틴 정권이 자기와 이름이 같은 후보를 출마시켜 표를 분산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2011년부터 현역 시의원으로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맞서는 반(反)정부 활동을 펼쳐왔다. 2018년엔 ‘푸틴의 셰프’라는 최측근 사업가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언론 협박 혐의를 공개 비판한 것을 비롯, 푸틴 비판 칼럼을 여러 차례 기고하기도 했다. 그는 “(푸틴 정권의) 방해에도 자리를 지킬 것”이라며 “진짜가 어디 있고, 가짜가 어디 있는지 잘 설명할 것”이라고 했다.

유권자들이 투표용지에서 이들을 구별할 방법이 없지는 않다. 러시아에선 누구의 아들이나 딸인지 알게 하기 위해 그 사람 아버지 이름에 ‘∼비치’(남자일 때) ‘∼브나’(여자일 때)를 붙인 부칭(父稱)을 미들 네임으로 사용한다. 아버지 이름이 알렉산드르면 그 아들은 알렉산드로비치이고, 딸은 알렉산드로브나가 돼 성과 이름 사이에 들어간다. 비슈녭스키 시의원은 “우리 당과 라자레비치라는 내 부칭을 꼭 기억시켜 선거에서 이기겠다”고 했다.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의 지지율은 코로나 실정 책임론으로 지난 3월 러시아 여론조사 기관 레바다 센터의 조사에서 27%를 기록해 8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지난해 사실상 합법적 종신 집권의 토대를 마련한 푸틴으로선 올해 선거가 매우 중요하다”며 “갈수록 야권을 탄압하려는 공작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