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째로 접어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황(戰況)을 보면서, 서방의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것은 ‘러시아의 압도적인 공군력은 어디로 갔느냐’는 것이다. 애초에 미 정보당국과 군사 전문가들은 전쟁 초기에 러시아 전투기들이 우크라이나 전투기들을 유린하고 공군 기지들을 맹폭해, 러시아 지상군이 마음놓고 전진할 수 있게 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공군기들은 지금도 계속 출격을 하며, 러시아에 결코 자국 영공을 호락호락 내주지 않는다.
또 러시아 전투기들은 출격해도 스마트폭탄인 정밀유도폭탄보다는, 이른바 ‘멍텅구리 폭탄(dumb bomb)’인 무(無)유도폭탄을 의외로 많이 사용한다. 이 탓에, 민간인 피해 규모가 더욱 커진다.
◇러시아 공군기의 1일 출격 횟수는 200회 정도
미 국방부 관리는 지난 11일 기자들에게 “러시아 공군기는 하루 200회 가량 출격하며, 이는 5~10회에 불과한 우크라이나 전투기 출격 횟수의 20배 이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 전투기와 폭격기들은 러시아 영토 내에 머물면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다고 밝혔다.
이는 우크라이나군이 보유한 차량 탑재용 지대공(地對空) 시스템과 견착식 스팅어 미사일 등이 러시아 전투기∙헬기를 격추하는데서 상당히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 관리는 “러시아가 공군력에서 전반적으로 리스크를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투기들도 이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 곳곳에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을 배치한 탓에, 출격 횟수가 줄었다. 대신에 값싸고 효율적인 드론 사용을 확대하고 있다.
◇ 첨단 전투기 vs. 구(舊)소련제 전투기의 싸움이라더니
러시아 공군의 역할이 크지 못한 것은 예상을 깬 것이다. 러시아 공군은 작년 여름, 2021년말까지 Su-30, Su-35, Su-37 전투기들과 Su-34 전폭기 등 모두 60대 이상을 새로 배치하고, 이미 시리아 등지에서 실전(實戰) 테스트를 마쳤다고 발표했었다. 전문가들의 뉴스 해설 웹사이트인 ‘컨버세이션’의 한 분석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항공기는 전투기∙헬기∙수송기 다 포함해서 200대 가량에 불과하다. 러시아는 전투기만 약 1500대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투기는 소련 시절 배치된 Su-24, Su-25, Mig기 등이 주(主)를 이룬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처럼 F-15, F-16과 같이 1980년대 배치된 전투기라도 계속 첨단무기와 센서, 시스템으로 업데이트했을 리도 없다.
미 공군 예비역 준장인 데이비드 뎁튤라는 11일 안보 전문 잡지인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우크라이나의 방공망(防空網)이 무력화(無力化)되지도 않았고, 우크라이나 공군 기지도 여전히 가동된다”며 “장거리 타격 외에, 러시아 전투기들의 공격은 사실상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 매우 창의적으로 대공(對空)시스템 활용”
우크라이나 공군이 자국 영공에서 나름대로 선전(善戰)할 수 있는 최대 요인은 미국을 비롯한 나토 국가들이 제공한 차량 탑재 방공 시스템과 견착식 미사일 등 각종 대공(對空) 무기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미국∙리투아니아∙라트비아 등은 견착식 스팅어 미사일 수백개를 우크라이나군에 제공했다. 이 미사일은 지상에서 3.5km 이내를 나는 전투기의 엔진을 추적해 파괴한다. 소련의 아프간 점령 시절 무자헤딘(이슬람 전사) 집단은 미 중앙정부국(CIA)으로부터 스팅어를 제공받아, 100여 대의 전투기와 300여 대의 헬기를 격추시켰다.
한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에 배치한 중거리 지대공 시스템인 부크(Buk) 미사일은 값싼 터키제 바이락타르 TB2 드론 공격에 취약했다. 미 공군의 고위 간부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우크라이나 군이 매우 창의적으로, 대공 시스템을 필요에 따라 적절히 배치해 사용한다”고 말했다.
◇러시아군, 갈수록 ‘멍텅구리’ 폭탄에 의존해 민간인 희생 커
우크라이나군도 러시아 공군기를 잡기 위해, 차량 탑재용인 부크 지대공 시스템을 사용한다. 이 탓에, 러시아 전투기는 부크의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 저공 비행을 하지만, 이 경우 견착식 미사일인 스팅어의 표적이 된다.
그런데도 러시아 전투기들은 저공 비행을 한다. 시일이 지날수록 러시아 전투기들의 공습이 ‘무(無)유도폭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무유도폭탄은 한번 투하하면 궤도 수정을 못한다. 러시아 전투기 조종사로선, 목표물을 정확히 식별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고도를 낮추거나, 중고도 이상에서 그냥 떨어뜨려 민간인 희생자를 양산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지난 3일 47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초래한 체르니히우의 아파트 단지 폭격도 Su-34 전폭기가 투하한 무유도폭탄에 의한 것이었다. 영국 시사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서방 군사전문가들은 Su-34 전폭기는 러시아 공군에서 정밀유도폭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기종인데, 무유도폭탄을 투하해 놀랐다”고 전했다.
그래서 일부에선 러시아군의 정밀유도폭탄 재고가 넉넉치 않은 듯하는 추측도 나온다. 미국 씽크탱크인 CNA 의 마이클 코프먼은 “러시아가 스마트폭탄의 양이 넉넉치 않아, 더 큰 전투에 사용하기 위해 아끼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또 지금까지 800기의 미사일을 소진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공군력을 계속 억지((抑止)하느냐는 전투기 대수와 대공 무기의 재고에 달렸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 9일 나토(NATO) 회원국인 폴란드가 독자적으로 미그 29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겠다는 제의를 나토-러시아 간 전쟁으로 확전되는 것을 우려해 막았다. 대신에, 우크라이나군에게도 익숙하고 나토의 구(舊)소련권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S-300 미사일 시스템을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