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동부 도네츠크주 격전지 바흐무트 인근에서 러시아군 진지를 향해 자주곡사포를 발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격전지 바흐무트가 러시아군의 손에 넘어가게 됐다는 관측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바흐무트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주요 도시로 진격할 수 있는 요충지로 보고 공세를 퍼부은 러시아군이 성과를 보이는 것이다. 다만 서방에서는 바흐무트의 점령 여부는 이번 전쟁의 대세와 관계없다며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용병단 와그너그룹의 수장 에브게니 프리고진은 8일(현지 시각) 바흐무트의 동쪽 구역을 완전히 점령했다고 주장했다.

바흐무트는 러시아가 지난해 자국 영토로 병합을 선포한 도네츠크주에 있는 요새도시다. 러시아군은 바흐무트를 도네츠크주의 주요 도시 크라마토르스크와 슬로우얀스크로 진격할 수 있는 거점으로 보고 지난해 7월부터 공세를 집중해왔다. 와그너 용병을 주축으로 북쪽, 동쪽, 남쪽 3면에서 압박했다. 전쟁 전까지 7만명이 살던 바흐무트는 무차별 포격과 총격으로 도시 전체가 괴멸 상태에 이르렀다.

지난 6일에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군 수뇌부가 반대해 철수는 안 된다며 바흐무트 사수 의지를 내보였다. 이튿날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바흐무트를 점령하면 도네츠크주에서 더 멀리 진군할 수 있다며 맞대응했다.

와그너그룹의 동쪽 완전점령 주장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군사 당국은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 병력이 우크라이나군 퇴각 뒤 동쪽 지역을 점령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군을 지원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도 러시아가 곧 바흐무트를 점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유럽연합(EU) 국방장관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계속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해 양으로 질을 메운다”며 “러시아가 큰 손실을 보고 있지만 바흐무트가 며칠 내 결국 함락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바흐무트 함락이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어떤 전환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러시아를 깔봐서는 안 된다는 점 정도가 부각될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실제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가 바흐무트를 점령한 후에도 계속 진격할 수 없도록 차이우 야르 등 바흐무트 서쪽 지역에 방어진을 이미 강화했다. 더 서쪽에 있는 크라마토르스크, 슬로우얀스크에는 이전보다 더 강력한 방어진이 구축됐다. ISW는 러시아가 바흐무트를 거점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진군하는데 필요한 기갑전력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체로도 러시아가 단기적으로는 바흐무트에 퍼부었던만큼의 공세를 다른 지역에서도 펼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의 애브릴 헤인스 국가정보국장은 러시아가 탄약, 병력 부족 때문에 점령지를 지키는 데 집중하는 전략으로 선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날 미 상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러시아는 공세를 계속하는 상황에서도 높은 사상률을 겪고 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국군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더 잘 이해했을 가능성이 크고, 이제는 더 제한적인 군사 목표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