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집권 3년여 만에 의회에서 불신임되며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사회민주당(SPD)과 녹색당, 자유민주당(FDP) 등 3당이 이끌어 온 연립정부가 지난달 FDP의 탈퇴로 붕괴하면서 예견됐던 일이다. 이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에 이어 독일까지, 유럽을 대표하는 세 나라의 총리가 올 하반기 들어 모두 바뀌게 됐다.
16일 독일 연방 의회는 찬성 207표, 반대 394표, 기권 116표로 숄츠 독일 총리에 대한 신임을 거부했다. 재적 의원 733명 중 숄츠 총리가 속한 SPD와 일부 무소속 의원만 찬성표를 냈다. 녹색당 의원들은 기권했고, 최대 야당 CDU·CSU와 FDP 등 야권은 모두 반대했다. 앞서 의회가 ‘총리 불신임안’을 발의해 통과시킨 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총리가 의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면 스스로 자신의 신임안을 상정토록 한다. 부결되면 사임해야 한다.
독일은 프랑스와 달리, 총리가 실권을 갖기 때문에 조기 총선이 불가피해졌다. 숄츠 총리는 신임안이 거부된 직후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을 방문해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요청했다. SPD는 CDU·CSU와 내년 2월 23일 조기 총선을 하기로 이미 합의한 상황이다. 숄츠 총리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임시 정부를 운영한다.
SPD, 녹색당, FDP 등 3당은 2021년 9월 총선 이후 3년여간 함께 독일을 이끌어 왔다. 각각 빨강·초록·노랑을 당 대표색으로 사용하는 탓에 ‘신호등 연정’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출범 석 달여 만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고, 이후 러시아산 원유·천연가스 공급 중단과 이에 따른 물가 급등으로 독일 경제가 휘청이자 연정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지원 수위, 탈원전 정책 지속 여부, 경제 침체 회복 방안 등을 놓고 분열과 대립을 벌였다.
숄츠 총리는 연정 내 갈등 조정에 실패했고, 결국 친기업·친원전 노선을 고집한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을 해임하며 파국을 불렀다. 린드너 장관은 FDP 대표다. FDP의 연정 탈퇴로 숄츠 정부는 위기에 몰렸다. SPD(206석)와 녹색당(118석)만으로는 총 의석수 736석인 연방 의회의 과반(368석)에 44석 부족하기 때문이다. 숄츠는 소수 연정을 유지하려고 CDU·CSU에 정책 협조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결국 안정적 국정 운영이 어려워졌고, 총리 사퇴와 조기 총선이 불가피해졌다.
독일 정치권은 이미 조기 총선 체제에 들어갔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CDU 대표, 녹색당 대표인 로베르트 하벡 부총리 겸 경제·기후부 장관, 알리스 바이델 독일을 위한 대안(AfD) 공동대표 등이 총리 후보로 나섰다. 숄츠도 연임에 도전하고 있으나 가능성은 낮다. 지난 14일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중도 우파 CDU·CSU 연합이 32%로 1위, 극우 AfD가 19%로 2위였고 중도 좌파 SPD(17%)와 녹색당(13%)이 그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