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 개발을 이끌었던 과학자가 테러 공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란 정부는 최대 적성국인 이스라엘을 암살 배후로 지목하고 복수 의지를 밝혔다.
이란 국영 IRNA통신 등은 27일(현지 시각) 이란 국방부의 연구·핵신 기구 수장이자 핵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59)가 테헤란 동쪽 소도시 아브사르드에서 매복 테러 공격을 받고 숨졌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당시 차량을 타고 이동 중이었는데, 차량 인근의 한 트럭에서 폭발물이 터졌고, 폭발 직후에 괴한들이 차량에 총격을 가했다. 파크리자데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목격자들은 언론에 폭발음과 기관총이 발사되는 소리를 들었다고 전했고, 사건 직후 소셜미디어 등에 공개된 현장 사진에는 파손된 차량과 도로에 남은 핏자국 등이 담겼다.
파크리자데는 1999~2003년 이란이 진행한 핵무기 개발 계획인 ‘아마드 프로젝트’를 주도한 최고위급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 2011년 유엔보고서에는 그가 이란의 핵무기 기술 개발에 참여했으며 여전히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담겼다. 서방 정보기관들은 그가 민간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가장해 핵탄두를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진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 내에서는 파크리자데를 ‘이란의 로버트 오펜하이머’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미국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인류 최초의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진행한 비밀 연구)’의 연구책임자다. 일부 외신은 지난 2013년 이란과 북한의 핵커넥션을 보도하면서 “이란 핵무기 총책임자인 파크리자데를 포함한 이란 핵과학자들이 북한의 3차 핵실험을 참관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한 바 있다.
이스라엘은 파크리자데를 이란 핵무기 개발의 아버지로 지목, 최근까지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018년 자국 정보기관 모사드가 테헤란 남서부 슈러브드 지역의 비밀시설을 급습해 확보한 핵개발 관련 기밀 자료를 공개하며 “아마드 프로젝트를 주도한 이란 핵과학자 파크리자데가 2018년에도 SPND라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비밀 조직의 책임자다. 파크리자데라는 이름을 기억하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란의 고위급 인사들은 파크리자데 암살과 관련해 이스라엘의 연관성을 주장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발언뿐만 아니라, 파크리자데가 여러 차례 모사드의 표적이 돼왔기 때문이다. 또한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무기 보유·개발을 막기 위해 이란 핵과학자들을 암살해왔다는 의혹은 숱하게 제기돼왔다.
호세인 살라미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성명을 통해 이 사건을 ‘테러 작전’이라고 규정하며 “이 비겁한 테러 행위의 기획자와 조정자들은 이 같은 야만적인 행동이 우리의 과학 지평을 정복하려는 집단 의지에 주름 하나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점과, 그들을 기다리는 복수가 이미 우리 일의 필수적인 부분이 됐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모하마드 자리프 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이스라엘의 역할을 암시하는 비겁함은 가해자들의 필사적인 전쟁 도발을 의미한다”며 “이란은 국제사회, 특히 EU에 부끄러운 이중잣대를 버리고 이런 국가 테러를 비난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군 참모총장은 “우리는 이번 일에 연관된 자들을 추적해 처벌할 때까지 쉬지 않겠다”며 “테러 조직과 그 지도자, 이 비겁한 시도의 가해자들은 엄중한 복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했다. 호세인 데흐건 이란 최고지도자 군사 수석보좌관은 “시온주의자(이스라엘)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 말미에 이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전면전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 백악관과 국가정보국(CIA)는 공식 언급을 피하는 가운데, 한 미국 정부 관리는 이 사건의 배후가 이스라엘이라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서 이스라엘 언론인이 파크리자데 암살에 대해 전한 글을 리트윗(재전송)하기도 했다. NYT는 “올해 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암살 때처럼 이란의 날카로운 반응이 빠르게 나왔다”며 “이란 핵협정을 되돌리려는 바이든 당선인의 노력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