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적 유조선이 걸프 해역(페르시아만)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의해 나포됐다고 이란 현지 매체와 외신들이 4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선박에는 한국인 선원 5명을 포함해 인도네시아·베트남·미얀마 국적 선원 등 20명이 타고 있었다. 우리 정부는 이날 “우리 선박이 이란 당국에 억류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청해부대를 호르무즈해협에 급파했다.
이란 파르스통신은 이날 “혁명수비대가 걸프 해역에서 한국 국기가 달린 한국 국적 유조선을 나포해 항구로 이동시켰다”며 “나포 이유는 기름 오염과 환경 위험”이라고 보도했다. 또 다른 이란 매체인 타스님통신은 이 배가 “7200t가량의 에탄올을 적재하고 있었고, 해양환경법을 위반해 나포됐다”고 보도했다. 선원들이 체포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해당 선박은 이란의 항구도시 반다르아바스 인근으로 이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포된 선박은 부산에 있는 해운회사 ‘디엠쉬핑’ 소속 ‘MT-한국케미호’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랍에미리트(UAE)의 푸자이라를 향해 이동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선박 정보 사이트인 ‘마린 트래픽’에 따르면 이 배는 이날 이란 영해에 위치해 있었다. 영국 해군의 해사무역기구도 “이란 당국과 한 상선 간 상호작용이 있었고, 그 결과 상선이 이란 영해 쪽으로 항로를 변경했다”고 전했다.
외교부는 “선원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선박 조기 억류 해제를 요청 중”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란에 의한 우리 상선 억류 상황을 접한 뒤, 청해부대를 호르무즈해협 인근 해역으로 출동시켰다”고 밝혔다.
해당 선박 소속사인 디엠쉬핑 관계자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우리 배는 공해를 지나다 이란 당국이 자국 해역에서 검사받을 것을 요구해 이동했으며, 환경법 위반 가능성은 아주 낮다”면서도 “조사를 위해 자국 영해로 이동시키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나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한국 은행에 동결된 이란 자금 문제로 이란과 한국 사이에 긴장이 있는 상태에서 이란이 한국 국적 선박을 나포했다”고 전했다. 앞서 이란 외교부는 곧 이란을 방문할 예정인 한국 외교부 인사와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로 한국 내 시중 은행에 동결된 이란 자산을 푸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과 이란은 2010년 미국 정부 승인 아래 국내 은행에 개설된 이란중앙은행의 원화 결제계좌로 교역해왔다. 2018년 9월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이란중앙은행에 대한 제재 수준을 올리면서 계좌 운용이 중단됐다. 한국의 은행에 묶인 이란의 자금은 80억~85억달러(8조6000억~9조25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나포가 이란 측 자산 동결과 직접 관련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발생했다. 나포 전날인 3일은 이란의 드론 공습으로 폭살된 이란 군부 실세 가셈 솔레이마니의 사망 1주기였다. 이란은 미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들에도 보복을 예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