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선수촌에 걸렸던 ‘이순신 장군 현수막’이 사흘 만에 철거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철거 요구에 따른 것이다. 대한체육회는 IOC로부터 ‘욱일기’ 제재를 약속받고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지난 16일 낮 IOC 관계자가 도쿄 하루미 올림픽 선수촌 내 한국 선수단 사무실에 직접 찾아와 이순신 현수막을 철거해줄 것을 요구했다. 앞서 14일 한국 선발대가 선수촌에 들어가자마자 테라스에 건 것으로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문구가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적혀 있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남긴 ‘금신전선상유십이(今臣戰船尙有十二)·신에게는 아직 배가 열두 척 있나이다’라는 보고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체육회는 “선수단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어 힘을 북돋아 주고, 국민 응원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었다.
하지만 이 문구에 일본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먼저 일본 도쿄스포츠가 15일 밤 “한국 선수단이 선수촌에 불온한 전시(戦時) 메시지를 내걸었다”면서 “이순신은 한국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출병에 저항한 ‘반일 영웅’으로 신격화돼 있다. 반일의 상징을 들고 나오고, 일본과 조선 사이의 전쟁과 관련된 말을 선수촌에 내건 것은 큰 파문이 예상된다”고 썼다.
다음날 16일 낮엔 일본 극우정당인 국민당이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국민당은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에 ‘말뚝 테러’를 저지른 스즈키 노부유키가 이끄는 혐한 성향 정당이다.
이날 오후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까지 정례 기자회견에서 “모든 올림픽 참가자가 올림픽·패럴림픽 정신에 따라 행동하길 기대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결국 IOC가 나서 현수막 철거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IOC는 관계자를 보내 먼저 철거를 요청하고, 이후 서신을 통해 “현수막에 인용된 문구는 전투에 참가하는 장군을 연상시킬 수 있다. ‘IOC 헌장 50조’에 위반되므로 철거를 해야 한다”고 공식 요구했다.
체육회는 처음엔 “단순한 일상적 응원 메시지이며 정치적 의도로 해석될 만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지만, IOC는 “전쟁 때 쓰였던 메시지라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체육회는 “앞으로 경기장 내에서 욱일기 응원이 벌어질 경우 같은 원칙을 적용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IOC가 모든 올림픽 시설에서의 욱일기 사용에 대해서도 같은 조항을 적용하기로 약속해 상호 합의하에 철거를 했다고 한다.
체육회 관계자는 “앞으로 선수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논쟁 거리를 제기하지 않겠다”며 “욱일기가 올림픽 반입 불가 품목으로 지정이 안돼있어 제재하기 어려웠는데, 이번 일을 통해 (제재) 약속을 받은 건 의미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