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기상연구소는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간 184억톤 정도의 그린란드 빙하가 녹았다고 밝혔다./Business Insider SA 트위터

사시사철 빙하로만 뒤덮여 있는 그린란드의 정상에서 기상 관측 사상 처음으로 눈이 아니라 비가 내렸다. 덴마크 영토인 그린란드는 한반도 9.7배 넓이에 달하는 세계 최대 섬으로 북극에 가까운 대서양 최북단에 있다. 기상 전문가들은 극지방의 원시 자연이 보존된 그린란드에서 기상이변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며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는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19일(현지 시각) CNN은 해발 약 3200m 높이인 그린란드의 정상에서 지난 14일 비가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곳에서 눈이 아닌 비로 강수량이 측정된 것은 예전에 한 번도 없었던 현상이라고 미 국립빙설데이터센터(NSIDC)가 밝혔다. 빗물양도 엄청났다. 이날 그린란드 정상 부근에 쏟아진 빗물은 모두 70억t에 달했다.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약 200만t 담수 가능) 3500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다.

게다가 이날 그린란드 정상의 기온은 9시간 동안 영상으로 올라갔다. 2010년이 되기 이전 그린란드 정상은 연중 영하에만 머물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미 국립과학재단(NSF)이 설치한 이곳의 기상관측소는 2011년 이후 영상의 기온이 측정되기 시작했으며, 비가 내린 14일이 세 번째였다고 밝혔다.

녹아내리는 빙하 속 야생화 - 그린란드 남부 나르사크 마을에 야생화가 핀 뒤로 바다 위에 떠 있는 빙하가 보인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해발 약 3200m 높이인 그린란드의 정상에서 지난 14일 기상 관측 사상 처음으로 눈이 아닌 비가 내렸다. 올여름 그린란드에서는 이상고온현상이 두드러져 예년 여름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빙하가 녹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린란드 정상에서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고 비가 내리자 빙하가 녹아내렸다. 이 일대에 비가 온 다음 날인 15일 하루 동안 녹아내린 빙하의 양은 올해 하루 평균치의 7배에 달한다고 NSIDC가 밝혔다.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교수는 “극지대에 비가 오면 빙하가 녹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빙하에 비가 내리면 물웅덩이가 생기는데, 물이 주변 얼음보다 태양열을 많이 흡수하면서 점차 깊어지고 빙하에 구멍을 뚫거나 빙산으로 떨어져 나온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극지방에서 비가 내리는 것은 단순히 기온이 오르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된다”고 했다.

그린란드 정상에서는 기상이변의 결과로 최근 5년 사이 북극곰이 세 차례 목격되는 전례 없던 현상이 나타났다고 NSF가 밝혔다. 먹이를 구하기 쉬운 해안 지대에 주로 머무는 북극곰이 기온 상승과 맞물려 해발 고도가 높은 곳으로도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올여름 그린란드는 이상고온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덴마크기상연구소(DMI)는 그린란드의 해발고도가 낮은 지역에서 섭씨 20도가 넘는 이상고온이 올여름 여러 차례 측정됐다고 밝혔다. 예년에 그린란드의 어떤 지역에서도 한여름 기온이 섭씨 10도를 넘기는 일이 드물었던 것과는 분명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지난 7월 28일 그린란드 북동쪽 네를레리트이나트공항의 기온은 섭씨 23.4도에 달했다. 이곳에서 측정된 기온으로는 역대 최고치였다.

그린란드 위치 지도 ㅛ시

이상고온이 지속되다 보니 올여름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는 속도 역시 기록적이다. 덴마크 기상학자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인 폴라 포털에 따르면 지난 7월 28일부터 닷새간 모두 410억t의 빙하가 녹아내렸다. 하루 평균 82억t의 빙하가 녹아 사라졌다는 의미다. 예년 여름 평균치(약 40억t)의 2배에 이르는 속도다.

지난 5월에는 그린란드 빙하의 상당 부분이 ‘티핑 포인트(작은 변화가 쌓여 어느 순간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게 되는 전환점)’ 직전에 놓여 있다는 독일·노르웨이 연구팀의 분석 결과가 발표됐다. 연구를 주도한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는 “빙하가 녹아 높이가 낮아지면 지표면 부근의 따뜻한 공기에 노출되는 면적이 넓어지면서 더 빨리 녹는 악순환에 들어선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빙하가 더 녹아 특정 지점을 넘기면, 설령 지구온난화가 당장 멈추더라도 빙하가 녹는 추세를 돌이킬 수 없어서 수세기에 걸쳐 해수면이 1~2m 더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할 경우에는 빙하가 더 빠르게 녹고 그만큼 해수면 상승에 속도가 붙는다는 얘기다.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아내리면 인류에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빙하가 녹은 차가운 담수가 바다로 흘러들면 수심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이렇게 되면 수천~수만 년 동안 안정적이었던 바닷물의 흐름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20세기 중반 이후 해류 순환 속도가 15% 느려지고 최근에는 “1000년 만에 가장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해류 순환이 느려지면 유럽과 아프리카 등에 가뭄이 심해지고 대서양에는 허리케인이 증가하는 등 이상 기후가 빈번해질 수 있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극지방의 빙하 감소는 해수면 상승뿐 아니라 온 지구의 기상이 변화한다는 일종의 신호”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