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에서 사실상 낙태를 금지하는 낙태 제한법이 발효되면서 텍사스주를 넘어 ‘원정 낙태’를 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일(현지 시각) AP통신에 따르면 텍사스주와 인접한 주의 병원들은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수의 낙태 상담 전화를 받고 있다.
오클라호마주의 한 클리닉에는 최근 낙태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는데, 그 중 3분의 2가 텍사스에서 걸려오는 전화라고 했다. 캔자스주의 한 클릭에서는 환자가 최대 40%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콜로라도의 한 클릭도 늘어나는 환자를 상대하기 위해 의료진을 추가로 모집하고 있다.
비영리단체 펀드 텍사스 초이스(FTC)는 텍사스를 비롯 낙태 제한법이 있는 지역의 여성들이 해당 지역을 벗어나 다른 주에서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원정 낙태의 비용을 지원하거나 원정 낙태를 하는 동안 아이돌봄을 제공하는 등의 도움을 주는 것이다. FTC 측은 “하루 이상 가족과 떨어져있거나 직장에 휴가를 낼 수 없는 여성들이 있는데 낙태 금지법으로 인해 이들이 낙태 시술을 받지 못할 수 있다”며 “이들의 두려움을 줄여주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AP통신에 따르면 2012~2017년 사이 최소 27만6000명의 여성이 자신이 살고있는 주를 넘어 원정 낙태 시술을 받았다. 이러한 추세는 그렉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가 거의 한달간 낙태를 금지했던 것으로 인해 지난 1년 동안 더 가속화됐다고 AP통신은 분석했다.
콜로라도, 뉴멕시코, 와이오밍, 남부 네바다 등에서 낙태를 원하는 텍사스인의 수는 이달 들어 12배 증가했다. 캔자스주에서 낙태를 한 텍사스 주민의 수는 2019년 25명이었지만 지난해 289명으로 급증했다. 낙태 지지 단체인 트러스트 우먼에 따르면 이 환자들은 평균 650마일(1000km)을 여행했다.
임신 건강 문제 연구단체 구트마허 인스티튜트도 법 시행 이전 텍사스 여성이 낙태 시술을 위해 병원을 찾는 평균 거리는 12마일(약 20㎞)이었으나 법 발효 이후에는 이동 거리가 20배나 증가한 248마일(약 400㎞)이 된다고 밝혔다.
전날 텍사스주에서 여성의 낙태를 사실상 금지하는 강력한 낙태 제한법이 발효됐다. 이날부터 시행된 법은 낙태 금지 시기를 기존의 ‘임신 20주 이후’에서 ‘6주 이후’로 앞당기는 것이 골자다. 공화당이 장악한 텍사스 주의회는 6주 된 태아는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는 점을 내세워 이 법을 ‘심장박동법(Heartbeat Bill)’으로 명명해 지난 5월 통과시켰다.
임신 6주는 임신부가 임신을 자각하기 어렵고 병원의 진단도 정확하지 않을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임신 사실 자체를 모를 수도 있는 시점으로 낙태 금지 시점을 앞당겨 사실상 낙태 금지와 같은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성폭행을 당했거나 근친 간 임신을 한 경우에도 낙태를 할 수 없도록 했다.
이는 미국이 1970년대부터 반세기간 낙태를 여성의 결정권 영역으로 보고 허용한 흐름을 정면으로 뒤집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텍사스는 ‘미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지역이자 캘리포니아에 이어 둘째로 인구가 많은 주(州)여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