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미국 로봇 전문업체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개 로봇 ‘Spot’을 테스트하고 있는 모습. 실험자가 로봇 테스트의 일환으로 로봇을 냅다 발로 차, 로봇이 휘청하며 넘어질 뻔 한다./보스턴 다이내믹스 유튜브 캡처

식당 서빙 로봇, 바리스타 로봇 등의 확산으로 로봇 세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로봇 학대’ 논란이 불거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한 행사장에서 시연 로보트를 뒤집어 엎는 모습에 대해 ‘보기에 불편했다’는 의견이 온라인 게시판 등에 연이어 올라오며 이슈가 된 것이다. “생명체가 아닌 기계에 대해 과도한 트집잡기”라는 역비판도 나온다.

해외에서는 로봇 학대에 대한 철학적·윤리적 논의가 수년전 벌어진 바 있다. 그 내용을 짚어봤다.

◇생명 아닌데 왜 불편해하나, 美서도 논란

2015년 2월, 미국 로봇 전문업체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유튜브에 개를 닮은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 클래식’을 공개했다. 스팟은 이번 국내 논란에서처럼, 얼굴은 없고 앞다리와 뒷다리만 달려 스스로 움직이는 로봇이었다.

해당 영상에는 테스트의 일환으로 이 로봇을 회사 관계자가 발로 강하게 한번, 약하게 한번 밀치는 모습이 담겼다. 로봇은 두어발 밀리기만 할 뿐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고 버틴다. 또 복잡한 사무실이나 울퉁불퉁한 언덕도 거침없이 누빈다.

단순히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해 만든 이 영상이 생각치 못한 반응을 불러왔다. 바로 ‘로봇학대’ 논란이었다. 한 네티즌이 영상에 “로봇에게 저토록 끔찍한 근무환경이라니, 끊임없는 학대(abuse)일 뿐”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 댓글에 대댓글 80개가 줄지어 달렸고, ‘좋아요’ 2000개가 붙었다. “로봇을 발로 차는 모습에 슬펐다” “감정이 없는 기계일 뿐인데 지나친 반응이다” 등 의견이 쏟아졌다. 트위터에도 “불쌍한 스팟” 등 많은 글이 올라왔다. 인간에게 학대당한 로봇이 보복한다는 내용의 유머 영상도 쏟아졌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성능 테스트 과정을 패러디한 영상./Corridor 유튜브 캡처

결국 현지 유력 언론이 이 사건을 다뤘다. CNN은 ‘로봇 개를 발로 차는 건 잔인한 짓인가?’라는 기사에서 “살아있는 생명체에 대한 학대가 아님에도, 많은 이들이 영상을 본 뒤 불편함을 느꼈다”며 “영상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윤리와 미래의 로봇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로봇 ‘스팟’에 대한 수많은 동정론은 반대로 다른 이들의 반발심도 자극했다. ‘고철 덩어리일 뿐인데 왜 오버하냐’는 심리다. 그 결과 로봇 학대 패러디물이 쏟아졌다. 로봇의 물건을 빼앗고, 로봇을 철제 의자로 두들겨패는 장면 등을 담은 영상등도 나왔다.

◇로봇청소기를 ‘이모님’으로 부르는 주부들

로봇에 대한 감정 이입은 국내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최근 유행하는 ‘로봇청소기’는 맘카페 등에서 흔히 ‘이모님’으로 불린다. 단순히 성능에 대한 찬사를 넘어, 주부의 가사 노동을 도와주는 동반자로 인식하는 사람도 많다.

주부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 등에는 “말 안듣고 어지르기만 하는 아들 녀석보다, 시키는대로 지치지도 않고 꾸역꾸역 청소해주는 ‘이모님’이 훨씬 낫다” “이모님이 잘 청소할 수 있도록 물건들을 치워뒀다” “우리집 애가 로봇 청소기 진로를 막고서 로봇이 허둥대는 모습에 낄낄대는 걸 보면서 분노가 치밀었다” 등의 글이 올라온다.

MIT 연구원이자 로봇 윤리학자 케이트 달링은 “우리는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들에 생명과 의도를 투영하도록 생물학적으로 타고났다”며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로봇을 살아있는 것처럼 대한다”고 했다. 본능적인 공감능력 때문이란 설명이었다.

◇“로봇학대, 진짜 개를 차는 것보단 낫지만…”

해외 전문가들도 ‘로봇은 로봇일 뿐’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영국 셰필드대학교 로봇 및 인공지능 과학자 노엘 샤키 교수는 CNN 인터뷰에서 “로봇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 한, 그러한 행위(발로 차기)가 비윤리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IT전문 매체 더버지(The Verge)는 로봇학대 패러디 영상을 소개하면서 “로봇은 의식이 없고 고통을 느낄 수 없으므로 로봇을 해쳐도 된다”면서도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로봇을 불쌍히 여긴다”고 했다. 더버지는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로봇을 인간처럼 대하는 것은 웃기게도 쉽다”며 “만약 로봇이 전원을 끄지 말라고 요청하는데 우리가 로봇을 끄면 우리는 기분이 별로 일 것이다. 또한 우리는 그들의 사적인 부분을 만지는 것을 불편해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로봇에 대한 폭력적 행위가 인간관계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현했다.샤키 교수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잔인하게 대함으로써 실제 생물도 그렇게 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동물보호단체 PETA는 “실제 개를 걷어차는 것보다 다리 4개가 달린 로봇을 차는 것이 훨씬 낫지만, 합리적인 사람은 폭력에 대한 그러한 생각까지도 부적절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