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 미국의 8번째로 큰 교역 상대로 부상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현지 시각) 미 상무부·통계국 자료를 인용해 보도했다. 지난 10여 년간 대만은 미국의 교역 순위에서 9~12위를 오갔는데, 올해 처음 8위에 오른 것이다. 미·중 국면에서 미국·대만 간의 밀착이 외교·안보를 넘어 통상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최대 교역국은 멕시코이고 캐나다, 중국, 일본, 독일, 한국, 영국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대만의 대미(對美) 수출액은 719억6000만달러(약 85조1000억 원)에 달해 트럼프 전 행정부가 중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 이전인 2017년과 비교했을 때 약 70% 증가했다. 대만이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총액은 같은 기간 약 35% 증가한 347억6000만달러(약 41조1000억원)다. 수출입 규모 모두 역대 최고치다.
미국과 대만의 교역량 급증은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부과한 고율 관세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WSJ은 분석했다. 미·중 갈등으로 전임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7월 중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했고,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이 조치를 이어받았다. 다수의 미국 기업들은 관세 장벽을 피해 대만과 거래를 늘리며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있다.
중국에 공장을 설립해 미국에 납품하던 대만계 회사들이 관세를 피해 대거 대만으로 ‘유턴’한 것도 미·대만 통상 강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미 유통업체인 홈디포·로우스 등에 금속 하드웨어 등을 납품하는 대만 기업 JC 그랜드는 지난 20년간 중국 저장성에서 주로 제품을 생산했지만, 미국의 대중 관세 부과 이후에는 대미 수출 물량 거의 대부분을 대만에서 생산한다.
대만 경제부 산하 인베스타이완(InvesTaiwan)에 따르면 2019년 이후 중국에서 대만으로 생산 기지를 이전한 기업은 243곳에 달하고, 이들 가운데 70%는 기술 수준이 높은 전자 제품 관련 회사다. 이들의 전체 투자액은 300억달러(35조4900억원)에 달한다. 인베스타이완은 “대만 정부가 공장 부지, 건설 비용, 직원 채용 등 다방면에서 기업들에게 당근책을 제시한 것도 유턴을 가속화했다”고 분석했다.
앤드루 와일갈라 주대만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대만 정부는 과거 수많은 대만 기업들이 중국 본토로 빠져 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다시 이들을 데려올 기회를 잡았다”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으로 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장기화한 것도 대만의 대미 수출량 증가를 불렀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인 TSMC를 보유한 대만이 미국의 중요한 반도체 공급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이 지난 1년간 대만으로부터 가장 많이 수입한 품목이 반도체다. 대만산(産) 컴퓨터·컴퓨터 부품·통신 설비 등의 대미 수출도 지난 1년간 급격히 늘었다.
대만 또한 미국으로부터 석유와 기계 부품, 자동차 수입 등을 늘렸다. 대만은 석유의 중동 의존도를 낮추고 수입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외교·안보 영역에서 협력을 확대하는 미국이 그 대안이 된 것이다.
대만 정부는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 경제적 유대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지난달 23일에는 ‘제2차 경제번영 파트너십 대화(EPPD)’ 화상 회의에서 미국과 대만이 반도체 공급망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고, 중국의 경제 압박 대응책을 논의했다. 미국과 대만은 지난 6월에는 2016년을 끝으로 5년간 중단된 무역투자기본협정(TIFA) 협상을 재개했다. TIFA는 FTA의 전 단계로, 이를 체결하면 미국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라이언 하스 수석연구원은 “이제 대만은 (중국 견제 등과 관련해) 그 자체로 중요하다”면서 “바이든 행정부는 실질적인 방식으로 양국 간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