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페루 리마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우크라이나 교민들이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본격화되고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의 편에 서겠다’고 외치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가장 큰 규모의 반전(反戰) 시위가 다름 아닌 러시아 내부에서 일어났다.

타임스스퀘어 우크라 지지 집회 - 24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대형 우크라이나 국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이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침공을 비판하며 공격 중단을 요구했다. 이날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주요 대도시를 비롯해 영국 런던,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도 같은 취지로 집회가 열렸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AP 연합뉴스

미국 내 우크라이나 교민이 5만여 명으로 가장 많은 뉴욕시에선 24일(현지 시각) 맨해튼 유엔본부 앞과 주(駐)유엔 러시아 대사관 앞, 중심지인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등에서 동시다발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 수천명은 푸틴 대통령을 살인자로 묘사하거나 욕설을 담은 포스터와 함께 “푸틴을 멈춰라, 전쟁을 멈춰라” “우크라이나에서 손 떼라” “지금 우크라이나를 돕지 않으면 다음 차례는 당신이 될 거예요” 같은 구호를 적은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뉴욕 시민들이 24일 주유엔 러시아 대사관으로 행진하기에 앞서 맨해튼 중심가인 타임스스퀘어에서 초대형 우크라이나 국기를 펼쳐들고 있다. 뉴욕시는 미국 내 우크라이나 교민 최대 밀집지역이다. /EPA 연합뉴스

시위대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몸에 휘감은 채 우크라이나 국화(國花)인 해바라기 등 노란 꽃을 들고 우크라이나 국가를 불렀다. 타임스스퀘어 한복판에선 초대형 우크라이나 국기를 펼치는 퍼포먼스가 열렸다. 이날 뉴욕 곳곳에서 우크라 교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서로 전황을 공유하고 우크라이나에 남은 가족 안부를 묻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대러 제재 담화 발표를 생중계로 함께 지켜보기도 했다.

24일 뉴욕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지금 우크라이나를 돕지 않으면 다음 차례는 당신이 될 거에요"란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문화계에선 친러 인사들의 퇴출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뉴욕 카네기홀은 24일 이번 주말 빈필하모닉 콘서트에서 푸틴 대통령의 지지자이자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을 옹호한 러시아의 유명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츠예프를 배제한다고 밝혔다. 뉴욕의 일부 러시아 전문 음식점도 폭동을 우려, 러시아 국기를 떼냈다.

(워싱턴DC AFP=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침공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시위가 펼쳐지고 있다. 한 시위 참가자가 든 손팻말에는 푸틴 대통령을 '살인자'라고 규탄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날 미 수도 워싱턴 DC의 러시아 대사관 앞과 백악관 앞에서도 수백명 규모의 시위가 이어졌다. 특히 러시아 대사관 앞엔 전날 밤 푸틴의 공격 명령이 떨어진 직후 몰려든 인파가 “푸틴을 제재하라”며 밤샘 시위를 했다. 대사관 앞 외벽과 거리에 붉은 페인트로 ‘살인(murder)’이라고 적은 시민이 공공기물 훼손으로 경찰에 연행됐다. 25일부터 휴스턴, 덴버, LA 등 미 대도시에서 시위가 예정됐다.

(베를린 AP=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 24일(현지시간) 독일 수도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시민들이 우크라이나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럽에서도 각국 수도의 러시아 대사관 주변에서 시위가 잇따랐다. 로이터와 AFP 통신에 따르면 24일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앞 광장에는 수백명이 모여들어 “푸틴은 우크라이나에서 나가라”고 외쳤다. 일부는 “독일은 러시아산 가스 구매를 멈추라.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라”고 호소했다. 프랑스 파리의 레퓌블리크 광장엔 1000여 명이 모여 우크라이나 국기와 함께 2008년 러시아에 침공당한 조지아 국기, 유럽연합(EU) 깃발을 흔들었다. 영국 런던에서도 수백명이 총리 관저인 다우닝 1번가 앞에서 “유럽의 단합된 대응으로 푸틴을 벌하라”고 외쳤다.

(런던 로이터=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영국 수도 런던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친(親)우크라이나 시위대가 '푸틴! 우크라이나에서 나가라!'라고 쓰인 팻말과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스페인·폴란드·체코·헝가리·이탈리아·스위스·네덜란드·그리스·노르웨이·스웨덴 등 유럽 각국 수도와 제네바의 유엔 유럽본부 앞에서도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러시아 대사관 앞 쌍독수리 문양 조각이 붉은 페인트를 뒤집어썼다. 중동의 터키·레바논·이스라엘, 일본과 호주, 캐나다와 멕시코 등에서도 “푸틴=히틀러” “우크라이나를 위한 평화” 같은 함성이 울려 퍼졌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로이터=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민들이 자국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항의하는 반전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 통신은 이날 러시아 당국이 전국에서 반전 시위를 벌인 약 1천700명을 체포했다고 전했다.

러시아에선 수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53개 도시에서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수만명의 국민이 시위를 벌였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러시아엔 우크라이나 국민을 형제처럼 여기는 정서가 있고, 푸틴이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무리한 전쟁을 벌였다는 비판론이 적지 않다고 한다. 시위대는 “푸틴의 선전에 속았다” “푸틴을 체포하라” “내 나라가 부끄럽다”며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정치범 체포를 감시하는 비정부기구 ‘OVD-인포’는 이날 총 1700명 이상의 국민이 구금됐다고 집계했다.

(토론토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시위가 24일(현지시각)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가운데 한 참가자가 '지금은 1932-1933년이 아니다.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지난 1932년 우크라이나에서는 300만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기근 '홀로도모르'가 발생했다. 이 대기근은 이오시프 스탈린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정치적으로 계획한 재난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현대까지도 우크라이나 내 반러시아 정서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렇게 즉각 세계에서 시위가 조직된 것은 소셜미디어의 힘이란 말도 나온다. 24일 새벽부터 텔레그램 메신저와 틱톡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로 진입하는 러시아군을 목격한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포스트가 속속 올라왔다. 유튜브엔 우크라이나 곳곳의 CCTV 화면을 보여주는 채널이 등장하고, 러시아군의 공격이 벌어진 곳을 실시간 지도로 보여주는 앱도 나왔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온라인 기부도 시작됐다. 우크라이나국립은행은 군을 위한 기부 계좌를 열어 달러와 유로, 엔화 등 각국 화폐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