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이 진짜 전면 침략에 나설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우리 국민이 끝까지 저항할 텐데, 그 과정에서 대량 학살이 벌어질까 봐 정말 두렵습니다.”
한국외국어대 올레나 쉐겔(41) 우크라이나어과 교수는 25일 “지금 이 순간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침략군을 상대로 필사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다”며 “우리가 그렇게 호락호락 나라를 내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쉐겔 교수는 지난 2000년 교환학생 신분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 서울대 석사와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 박사를 거쳐 한국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는 현재 부모님과 여동생 가족이 살고 있다.
쉐겔 교수는 “올해 만 65세이신 아버지도 러시아군과 어떻게든 맞서 싸우겠다고 전부터 계속 얘기했다. 존경스럽긴 하지만 딸 입장에서 너무 걱정된다”며 “지금 우크라이나 국민의 마음이 다 이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전면전이 벌어진 상황에서 우리 국민이 절대 굴복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싸운다면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국제사회가 이런 사태만은 막을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금 정도의 제재로는 푸틴을 흔들 수 없다”며 “대단히 강력한 제재로 푸틴을 때려야 한다”고도 했다.
쉐겔 교수는 “한 역사학자가 우리나라에 대해 ‘자연으로부터 축복받은 땅, 하지만 역사로부터 저주받은 땅’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며 “그토록 오랫동안 열망했던 우리 민족의 꿈, 러시아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쟁취한 지 불과 30여년밖에 안 됐는데 또 다시 러시아로부터 침략을 받게 돼 너무 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를 한국과 일본의 관계라고 생각하며 된다고 했다. 한국 사람이 일본을 싫어하는 것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러시아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러시아의 침공은 일본이 다시 한국을 침략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옛 소련 시절, 그들이 자행했던 폭정과 억압, 학살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1930년대 초반 소련이 고의로 일으킨 ‘홀로도모르(대기근)’ 때문에 우크라이나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굶어 죽었고, 들판에 버려진 이삭 세 톨만 주워도 현장에서 러시아 비밀경찰 총에 맞아 죽었던 일들을 모두 기억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매년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홀로도모르 추념일로 삼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최근 대국민연설 등에서 “우크라이나는 한 번도 국가의 지위를 가져본 적이 없다” “우크라이나가 나토(NATO) 가입을 포기하고 중립국으로 남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은 모두 거짓이라고 했다. 쉐겔 교수는 “지난 1991년 독립을 쟁취한 뒤 우리 헌법은 ‘우크라이나는 중립 국가다’라고 명시했었다”며 “우리가 나토 가입을 추진한 건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한 이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린 원래 중립 국가였는데, 그때 러시아가 우리를 침략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우크라이나 역사와 관련해서도 중세 때 키예프루스 공국이 몽골에 의해 멸망한 이후에도 ‘하르치 볼릉 공국’과 코사크 국가가 민족 국가로서의 맥을 이었다고 했다. 한반도에서 신라가 망해도 고려와 조선이 뒤를 잇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우리가 워낙 러시아를 반대하고 극렬 저항할 것이기 때문에 푸틴이 우리나라 전체를 공격할 수 있겠지만, 오랫동안 지배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그럴 경우 러시아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확실한 동맹을 갖고 있어야 하고, 나 자신도 어느 정도의 힘은 꼭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