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도심 도로에 우크라이나 민병대가 러시아군의 진입을 막기위해 설치해 놓은 장애물이 설치돼 있다./AP 연합뉴스

지난 28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불과 35㎞ 떨어진 벨라루스 고멜(Gomel)에서 시작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회담은 이번 사태의 향후 전개를 가름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당초 이번 침공이 일방적으로 끝날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우크라이나군이 의외의 선전을 하면서, 단기간에 승부를 내려던 러시아의 계획이 어긋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더 큰 희생을 감수하고 더 강력한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엔드 게임(end game·끝내기 전략)’을 펼칠 것인지, 아니면 협상을 통해 전략적 목적을 관철하는 ‘엑시트 플랜(exit plan·출구 전략)’을 택할지 기로에 놓였다.

영국 BBC와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은 “개전 2~3일 내에 수도 키예프를 점령할 것으로 예상됐던 러시아군의 파상 공세가 예상외로 강력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가로막혔다”며 “러시아군이 사기 저하와 보급 부족 문제를 겪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측은 지금까지 13만명이 군에 자원 입대하고 곳곳에서 민병대가 구성되는 등 시민의 항전 의지가 달아오르며 반격이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 미사일·탄약과 전투기까지 서방의 지원이 줄을 잇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전투력이 쉽게 꺾이지 않을 상황이다.

2월 27일 우크라이나 키예프 외곽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진지를 구축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EPA연합뉴스

러시아군은 현재 수도 키예프와 제2 도시인 북동부 하르키우 등 전세를 결정지을 전략적 목표의 공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군이 이르펜과 포르젤, 부차 등 키예프 외곽 도시에서 러시아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으며, 러시아군이 후퇴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또 26일 밤 러시아군에게 일부 점령됐던 하르키우도 27일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반격에 힘입어 다시 우크라이나의 수중에 떨어졌다. 현지의 지형과 지물에 익숙한 우크라이나군과 민병대가 시가전에서 러시아군에 우위를 보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이 예상외로 격렬해지자 러시아군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묘수를 짜내고 있다. 우선 추가 병력을 투입해 공세를 강화하려는 정황도 확인되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은 “키예프 북서부 60㎞ 벨라루스 국경 근방에서 대규모의 러시아군 이동이 관측됐다”고 보도했다. 또 겉으로는 우크라이나와 정전 회담을 열면서, 뒤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지도부의 제거 계획에 착수했다. 영국 더 타임스는 “러시아 민간 용병 업체인 와그너 그룹 소속 전투원 400여 명이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침투했다”며 “이들의 목표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비탈리 클리치코 키예프 시장 등 23명을 암살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와 군의 최고 지휘부를 무너뜨려 항전 의지를 꺾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친러 괴뢰 정권을 세울 기반을 만들려는 것이다.

이 아이에게 무슨 죄가… - 27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마리우폴의 시립병원에서 구급대원이 구급차로 실려온 소녀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동안 아버지가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주택가 포격으로 다친 이 소녀는 끝내 숨을 거뒀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이날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러시아 침공 이후 어린이 14명을 포함해 민간인 352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AP 연합뉴스

여러 측면에서 러시아의 입지는 좁아질 대로 좁아진 상황이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배제, 주요 기업과 정치인에 대한 자산 동결, 전략 물자에 대한 각종 금수 조치 등 역대 최고 수준의 경제 조치에 이어 러시아 항공기의 유럽 영공 진입 불허, 러시아 매체의 송출 금지 등 새로운 제재가 계속 추가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여론도 비등하고 있다.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지난 3일 새 36%나 급락하고, 기업들의 해외 자금 결제가 중단되면서 경제적 타격이 현실화하자 “전쟁 중단”을 요구하는 러시아 기업인들도 나오고 있다.

결국 점점 기세가 오르는 우크라이나군의 반격과 초반 부진을 타개하려는 러시아군의 공세가 모두 거세지면서 양측 간 전투로 인한 피해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전 협상이 벌어진 이날도 폴란드 국경에 인접한 우크라이나 서부에서 러시아의 공세는 한층 강화됐다. 이 지역 중심 도시 리비우에는 러시아군에 맞선 우크라이나군의 방어선 구축이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이곳은 폴란드로 탈출을 염두에 두고 다수의 피란민이 모여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러시아군은 또 크림반도와 돈바스 도네츠크 사이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멜레토플을 점령, 고립되어 있던 크림반도를 돈바스 지역과 연결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