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은 일부러 주택가에 군사 장비를 배치해 민간인을 방패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1일(현지 시각) 러시아 관영 방송 로시야1은 “우크라이나군이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며 이렇게 보도했다. 같은 시각 영국 BBC는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의 TV 송신 타워가 폭파됐다는 소식을 내보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체제의 나팔수 역할을 하는 러시아 관영 방송이 마치 러시아는 죄가 없는 것처럼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린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기습 침공한 지난달 24일 이후 러시아 정부는 언론 검열과 통제를 부쩍 강화하고 있다. 전국적 반전(反戰) 시위에 대해서는 시위대를 무차별 체포하는 강공으로 대응하고 있다. 서방의 제재에 따른 사회 혼란과 국제사회의 비난으로 궁지에 몰린 푸틴이 초조한 나머지 공포 정국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조만간 계엄령을 선포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러시아 관영 방송들은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을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맞선 소련의 싸움에 빗대고 있다. 관영 로시야24는 “우크라이나군은 파시스트처럼 행동하고 (우크라이나의) 신(新)나치주의자들은 어린이들이 모인 지하실에 군사 장비를 배치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관영 매체들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결사 항전이나 러시아군의 고전은 다루지 않거나 “가짜 뉴스”라고 둘러대고 있다. 로시야1은 “우크라이나는 스스로 포탄을 떨어뜨리며 서방 세계에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의 미디어 규제 당국인 로스콤나드조르는 보도 지침을 하달, 러시아군의 움직임에 대해 ‘침공’ ‘공격’ ‘전쟁 선포’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대신 ‘특별 군사작전’이라는 표현을 쓰도록 했다. 불응하면 최대 500만루블(약 52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 하원은 러시아군 활동에 대해 허위 정보를 유포하면 최고 징역 15년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는 방향으로 형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 검찰은 ‘침공’이라는 표현을 쓴 반정부 성향 독립 방송사 ‘에호모스크비’와 ‘도즈디TV’의 송출을 중단시키고 두 방송사의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 계정을 모두 폐쇄했다. 도즈디TV의 티혼 드자드코 보도국장은 “신변에 위협을 느껴 러시아를 잠시 떠나기로 했다”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남겼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매일 러시아 전역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반전 시위도 푸틴에게는 부담이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공격을 멈추라는 시위는 적어도 도시 57곳에서 벌어졌다. 교도소에 갇혀 있는 푸틴의 정적(政敵) 알렉세이 나발니는 대변인을 통해 “(푸틴은) 분명히 미친 황제”라며 “우리는 전쟁 종식을 요구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며 반전 시위를 촉구했다.
러시아 경찰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닥치는 대로 시위대를 체포해 경찰서 유치장에 집어넣고 있다. 지난 2일 러시아 경찰은 모스크바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 앞에 헌화하던 여성 2명과 이들의 7~11세 자녀 5명을 체포했다. 철창 속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거나 크레용으로 ‘전쟁 반대’라고 적은 작은 피켓을 들고 있는 장면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퍼졌다. 러시아 제2 도시이자 푸틴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77세 여성 예술가인 옐레나 오시포바가 반전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됐다. 현지 인권 단체 ‘OVD인포’에 따르면, 반전 시위로 체포된 사람이 7600여 명에 이른다.
푸틴을 연구해온 국제정치학자 타티야나 스타노바야는 “반전 시위를 막으려 러시아 의회가 조만간 푸틴의 계엄령 선포에 동의할 것”이라고 텔레그램 메시지를 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