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에 겨우 기대앉은 그의 얼굴은 비탄과 절망에 잠겨있다. 스무 해 넘게 품안에서 키운 자식이 전장에서 스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의 얼굴이다. 이 여성의 이름은 류드밀라 칸지나. 러시아 볼가강변 도시 사라토프 외곽 마을 오지요르노예의 협동농장에서 일하며 가족들을 부양해왔다. 녹록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자식들만 보고 억척스럽게 살아왔던 그녀는 2월 25일 그에게 믿기 힘든 전화가 걸려왔다. 우크라이나 침공병력으로 징집돼 전선으로 투입된 아들 막심 카니진이 침공 당일인 전날 전사했다는 내용이었다. 스물 두살 생일을 불과 이틀 앞둔 날이었다.

우크라이나 침공병력으로 징집된 아들 막심의 사망 소식을 들은 어머니 류드밀라가 절규하고 있다. /자유유럽방송

류드밀라는 그 자리에서 혼절했다. 이어 러시아군 관계자가 전사통지서를 들고 집을 찾아왔다. 외손자를 잃은 류드밀라의 외할머니가 “우리 아이는 언제 돌아올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특수작전이 끝날 때까지는 유해를 데리고 오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마을 묘지에 묏자리를 마련해뒀지만, 막심의 시신은 기약없이 전선(戰線)에 남아있다.

침공한 러시아와 저항하는 우크라이나의 혈전 속에 이처럼 젊은 러시아군인들의 부고가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고향마을로 도착하고 있는 상황을 미국 자유유럽방송(RFE)이 5일 보도했다. 숨진 군인 대부분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징집된 젊은이들이었다는 점에서, 이 전쟁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근본적인 물음을 갖게 한다. 침공을 밀어붙인 정권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철저히 억압받는 상황에서 가족들은 소리죽여 피울음을 울며 희생자들의 귀환과 영면을 준비하고 있다. 카니진 가족의 집에는 마을사람들이 가져다놓은 조화가 가득 쌓였다.

가족과 고향사람들이 묘지의 한 켠에 마련해준 군인 막심의 묏자리. /자유유럽방송

현재까지 집계된 러시아군 사망자는 러시아측 발표(498명)과 우크라이나 추정치(9000명)과 차이가 나도 너무 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는 저항군의 사기진작을 위해 러시아에게 타격을 입혔음을 알리려 하고, 러시아는 자국이 입은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 처지다. 러시아에 본부를 둔 전쟁갈등연구소는 “적게는 700명, 많게는 2000명 사이로 본다”고 밝혔다. 사상자 숫자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면서 이들의 부고도 속속 가족들에게 도착하고 있는 중이다.

타타르스탄의 도시 니즈네캄스크 출신의 군인 일리누르 시브라툴린은 침공 사흘째이던 지난달 26일 숨졌다. 그의 유해는 지난 2일 고향마을로 왔고, 이슬람 방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점령하려는 러시아와 지켜내려는 우크라이나의 치열한 교전이 진행되고 있는 흑해 연안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지난 3일 별을 두 개 단 장성 안드레이 수코베츠키 장군이 사살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동시에 다른 이의 죽음 소식도 들려왔다. 노보시비르스크 출신 안드레이 트라브니코프다.

우크라이나에서 목숨을 잃은 막심 카니진의전사통지서 /자유아시아방송

젊은 장교들의 전사소식도 잇따르고 있다. 전날에는 남서부 아스트라칸에 위치한 바타즈노예 출신인 31세 알리 바트료프 소령이 부인과 자녀를 남기고 사망 했다는 소식이 사흘만에 알려졌다. 부랴티아 지역의 셀렌진스키에서도 시리아 참전 경험이 있는 대위 일리야 세묘노프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아스트라칸 지역의 행정책임자 이고르 바부슈킨도 지역 젊은이인 아르만 나린바예프가 죽은 것으로 확인했다. 북캅카스 자치공화국들도 여러명의 출신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사망자 가족 못지 않게 절망한 이들이 있으니, 바로 소식이 끊긴 군인 가족이다. 타타르스탄의 지니즈니 우레스 마을에 사는 갈리나 지노비예바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스물한살 아들 막심의 소식을 40일째 듣지 못해 불안해하고 있다. 아들로부터 벨라루스에 훈련차 도착했다는 얘길 들은게 전부이다. 2월 하순경에는 기존 주둔부대로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갈리나는 RFE에 절망적이고 불안한 심경을 피력했다. “내 아들은 어딨죠? 왜 전화를 안하나요? 모든게 불확실한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