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에서 시민들이 모래주머니를 쌓아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물류 중심지인 이 도시를 공략하려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은 주요 도로에 지뢰를 묻는 등 자체적으로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헤르손은 우크라이나.” “러시아군은 물러가라.”

지난 5일(현지 시각) 오전 10시 러시아군에 점령된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헤르손의 중앙 광장에는 시민 2000명이 모여 구호를 외쳤다. 한 남성이 러시아군 장갑차에 뛰어올라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들자 시민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군중 위로 행진을 저지하기 위한 총성이 이어졌지만, 시위를 막진 못했다. 헤르손뿐만 아니라 러시아군이 점령한 도시 곳곳에서 이 같은 시민들의 비무장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6일 보도했다.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 피해가 잇따르고 있지만 “침략자에 맞서 조국을 지키겠다”며 시민들이 일어서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5일 밤 온라인 대국민 연설에서 “시민들이 우리의 영토에서 러시아군을 몰아내고 있다”며 “우리가 알고, 사랑하고, 지켜야 하는 우크라이나는 적 앞에서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튿날 드미트로 쿨레바 외무장관은 CNN 인터뷰에서 “러시아군과 싸우려고 우크라이나로 건너온 외국인 의용군이 약 2만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생업에 종사하던 평범한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침략군에 맞서고 있다. 70대 할머니는 고향에 남아 러시아군에 맞설 화염병을 만들었고, 건설 현장 인부들은 대전차 장애물을 세웠다. 러시아의 침공이 예상되는 일부 지역에서는 시민들이 힘을 합쳐 요새를 쌓았다.

갈리나 쿠체렌코(72) 할머니는 러시아군 침공으로 폐허가 된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떠나지 않고 있다. 자녀 넷과 손자 셋을 둔 그는 “도시를 지키는 것은 어른들의 의무”라고 일간 인디펜던트에 말했다. 그의 아들 올레크시(47)는 “(어머니가) 이곳에서 어떻게든 (군인들을) 돕고 싶다고 말해,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 남았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서부 소도시 흐멜니츠키의 아파트 건설 현장 인부들은 쳐들어오는 러시아군 탱크를 막아설 장애물 만들기에 나섰다. 현장 소장 세르히(40)와 작업자 6명은 개전 이후 1주일간 철제 대전차 장애물 23개를 만들었다. 징집 대상자인 세르게이는 대전차 장애물을 전선을 향하는 트럭에 실으면서 “입대를 기다리는 줄이 24시간 동안 이어지고 있지만,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겠다”고 말했다.

별다른 기술이 없는 일반 시민들도 전선에서 싸우는 군부대에 보낼 전쟁 물자 제작에 힘을 보탰다.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의 커뮤니티 센터는 러시아군 침공 직후 군수품 공장이 됐다. 목수들이 나무로 틀을 짜 어망을 걸면, 주민들은 입지 않는 옷가지를 잘게 잘라 걸었다. 이렇게 완성한 군사용 위장 그물은 우크라이나군의 탱크와 참호를 적의 시야에서 숨기는 데 사용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세르게이(31)는 “집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나마 전쟁에 기여하기로 결심했다”며 “솔직히 우리 국민의 결속력이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다 함께 힘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이 키이우에 있다는 이리나(25)는 “이곳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며 “우리는 강하고 독립적이며, 우리 군대와 우크라이나를 믿는다”고 말했다.

6일 러시아군이 진격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최대 항구 도시인 오데사에선 시민들이 푸틴의 무자비한 공세를 막을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군의 침공 직후 시민들은 매일 해변가에 모여 자루에 모래를 퍼담았다. 이렇게 만든 모래주머니 30만개를 도시 주요 시설로 통하는 도로 곳곳에 쌓아 놓았다. 참전 용사인 유리(66)는 “우리는 언제든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푸틴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도 대비하고 있다”고 일간 더타임스에 말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체코로 피란 보낸 뒤 이곳으로 돌아왔다는 주민 게나디 트루하노프는 “우리를 러시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언론 검열과 통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러시아 내부에서도 반전 시위가 번지고 있다. 러시아 인권단체 ‘OVD-인포’는 지난 6일 하루 동안 러시아 56개 도시에서 반전 시위로 4360여 명이 체포됐다고 BBC에 전했다. 미국 타임지는 “러시아 내부에서의 반전운동이 반(反)푸틴 운동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결국 푸틴 정권에 치명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