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상징으로 알려진 알파벳 ‘Z’ 표식이 러시아 내에서 반정부 세력을 압박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전쟁 반대를 외친 활동가들 거주지에 욕설과 함께 ‘Z’ 표식 낙서가 새겨졌다는 인증 글도 잇따르고 있다.
러시아 활동가 올가 미시크(20)는 지난 17일 트위터에 자신의 아파트 현관문을 촬영한 사진 세장을 공개했다. 흰색 스프레이로 ‘Z’ 표식이 크게 그려져 있으며 그 아래에는 “조국을 팔지 말라. XX야”라는 욕설이 적혀 있다.
미시크는 2019년 러시아 선거관리위원회가 모스크바 시의회 선거에 야권 정치인들의 입후보를 거부해 촉발한 민주화 시위에서 얼굴을 알린 활동가다. 당시 17살 소녀였던 그는 방탄조끼 차림을 한 채 길바닥에 주저앉아 1993년 개정된 러시아 헌법 책을 낭독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무장경찰들에게 둘러싸이고도 평온한 얼굴로 헌법을 읽어 내려간 미시크의 모습은 큰 화제를 모았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헌법의 가치와 시민의 권리를 깨우치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동시에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Z’ 표식을 받은 반정부 활동가는 미시크 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본격화된 이후부터 소셜미디어에 전쟁 반대 의사를 드러내온 한 활동가도 최근 “시작됐다”는 짧은 글과 함께 현관문을 찍은 사진 한 장을 게시했다.
미시크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Z’ 표식이 문과 벽면에 새겨졌으며, 검은색 스프레이로 쓴 “인민의 적”이라는 문구도 덧붙여져 있다. 또 그는 흰색 자동차에 그려진 두 개의 ‘Z’ 표식을 공개하기도 했다.
‘Z’ 표식은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러시아 탱크와 로켓 발사대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지난 7일 한 국제대회에 출전한 러시아 체조선수가 유니폼 가슴 부분에 이 표식을 그린 채 시상대에 올라 눈길을 끌었고, 방송과 소셜미디어에서 ‘Z 티셔츠’ ‘Z 드론 퍼포먼스’ 등이 이어지며 확산했다.
‘Z’에 담긴 뜻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승리를 위해’라는 뜻의 러시아어 ‘자 파비에데(Za pobedy)’의 첫 글자를 땄다는 것과, 러시아 ‘서쪽(자파드·Zapad)’에 있는 우크라이나로 진격하는 방향을 가리킨다는 주장이 있다. 또 표적 1순위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Zelensky)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의미한다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