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침공을 4주째 지속하는 러시아가 압도적인 공군력에도 여전히 제공권(air supremacy)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 군·정보 기관과 언론은 우크라이나군의 뛰어난 공중전 기술과 투혼을 배경으로 꼽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공군력이 이번 전쟁의 ‘비장의 무기(trump card)’”라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 공군이 전투기를 하루 평균 200회 출격시키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5~10회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전투기 보유 대수에서도 우크라이나는 55대, 러시아는 600여 대로 10배 넘게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객관적 전력의 열세에도 우크라이나 공군은 개전 이후 러시아 최신 전투기와 무인 드론 등 97대를 격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확한 숫자에 대해선 검증이 필요하지만, 러시아 전투기의 격추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공개되고, 기체 잔해가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러시아 공군의 피해가 적지 않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 견해다. 미국 국방부는 “러시아가 출격 횟수를 하루 300회까지 늘리기도 했지만, 전투기 대부분은 러시아와 친러 벨라루스 내에 대기하고 있다”며 “러시아가 제공권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 방공 시스템은 1970~80년대 도입한 옛 소련제 S-300 장거리 미사일을 중심으로, 90년대 이후 미국 등 서방이 지원한 중·단거리 미사일을 추가한 구조라고 한다. 전투기도 대부분 옛 소련제 Su(수호이)-27기다. 반면 러시아 공군 주력기는 최첨단 Su-34와 Su-35기다. NYT에 따르면 이런 전력 차이에도 현재 우크라이나 영공에선 현대전에서 보기 드문, 80년대 할리우드 영화 ‘탑건’ 스타일의 공중전이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전투기 간 공중전은 미 공군도 1991년 이라크전 이후 벌인 적이 없다.
이와 관련, 우크라이나 공군은 “우리 영공이기 때문에 우리 방공 시스템이 더 유효하다”고 할 뿐, 구체적 전략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WSJ는 “우크라이나군 지휘 체계는 지휘관 한 명에게 의존하는 소련·러시아식 중앙집권 방식을 탈피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군 스타일”이라며 “다양한 현장 상황에서 빠르고 유연하게 변화를 줄 수 있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40년 된 Su-27 전투기를 조종하는 우크라이나 파일럿 ‘안드리우’(25)는 NYT 인터뷰에서 “(공대공 교전에서) 내 조종술이 러시아 조종사보다 뛰어나다”고 전했다. 그는 “무슨 명령이 떨어질지 모르는 채 밤마다 출격한다. 나가면 항상 5배는 많은 적에 둘러싸인다”며 “러시아 전투기가 연료를 빠르게 소진하도록 일부러 협곡 등 험한 지형으로 유인한다”고 했다. 안드리우는 “적군 전투기를 육안으로 보고 조준할 정도로 근접 비행한 적도 있다”며 “본부에서 ‘상대가 이미 널 향해 미사일을 쐈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최대한 정밀 조준해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보다 유능한 동료가 이미 많이 죽었다”며 “나도 ‘마지막일 수 있다’는 심정으로 출격한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러시아 전투기에 격추당하거나 고장 나 비행이 불가능한 우크라이나 전투기가 늘고 있다. 활주로가 파괴돼 일반 고속도로에서 이착륙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서방국에 공군 장비 지원과 비행 금지 구역 설정을 요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