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본격화하고 한 달가량이 지났다. 우크라이나 인구 4분의 1을 넘는 1000만명가량이 피란길을 떠났고, 민간인 900여명이 숨졌다.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비롯한 각지에 남은 주민들은 러시아군의 포격 세례 속 목숨을 지키려 달아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제2 도시 하르키우의 지하철역은 포격을 피해 도망친 주민들의 새 보금자리가 됐다. 역사(驛舍)를 지탱하는 기둥 사이 공간, 멈춰버린 열차의 좌석 등 몸 누일 수 있는 곳이라면 주민들의 침대가 된다. 전력 공급이 유지된 에스컬레이터는 어린 아이들의 놀이터로 쓰이고 있다. 이들은 빵과 우유 등 자원봉사자가 가져오는 작은 식사거리를 서로 나누며 허기를 달랜다.
21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WP)는 수천 명의 하르키우 주민들이 황폐화한 도시와 쏟아지는 포탄을 피해 지하로 내려와 살고 있다고 전했다. 열차 도착을 알리던 역내 스피커는 음식을 챙겨온 자원봉사자들의 도착 소식을 알린다. 대리석 기둥에 우크라이나군을 지지하는 의미의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하르키우 주민 옐레나(61)는 WP 인터뷰에서 “우리는 너무 아름다운 도시를 갖고 있었지만,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모두 잃었다”고 말했다. 어린 두 아들의 미혼모 블라드레나 이고리브나는 “이곳(역내)에 남은 모두가 대가족과 같다”며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차량도 없고 갈 곳도 없어요. 무엇보다도, 이곳은 우리들의 도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