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4일(현지시간) 한 주민이 구호품을 실은 카트를 밀면서 폐허로 변한 아파트 앞을 걸어가고 있다. 마리우폴은 지난달 초부터 러시아군의 포위 공격으로 주택 대부분이 파괴되고 식량, 수돗물, 전기 공급이 끊겨 주민들이 구호품으로 연명하고 있다. 2022.4.5/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한 달 넘게 격전이 벌어진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마리우폴에서 거리의 민간인 시신을 모아 불태워 없애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부차 등 수도 키이우 인근 점령지에서 벌어진 민간인 집단 학살 참극이 드러나며 국제적 비난을 받게 되자, 다른 지역의 민간인 피해 증거를 적극적으로 은폐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군은 침공 직전 주둔지에서 다수 발견된 이동식 화장(火葬) 장비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리우폴 시 당국은 6일(현지 시각) “부차의 대량 학살이 알려진 직후, 러시아군이 친러 성향 주민과 반군 병력을 동원해 거리에서 시신을 수거하기 시작했다”며 “시내 모처에 시신을 모아놓고 준비한 이동식 화장 장비로 태워 없애고 있다”고 밝혔다. 시 당국은 “이는 ‘학살 증거(시신)를 인멸하라’는 러시아 정부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며 “러시아가 도시 전체를 아우슈비츠 같은 ‘죽음의 수용소’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우슈비츠는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폴란드 남부에서 운영한 유대인 절멸 수용소로, 여기서 살해된 110만명의 시신 상당수가 조직적으로 화장 처리됐다.

한달째 포위된 마리우폴… "개천 구정물 퍼다 마신다" - 러시아군 포위 공격이 한 달 넘게 이어지면서 식량과 식수가 완전히 바닥난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주민들이 6일(현지 시각) 빈 물통을 들고 식수를 찾아다니고 있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시민들이 개천 구정물을 마시고 쓰레기통을 뒤져 배를 채우고 있다”고 했다. 개전 이후 마리우폴에선 도시 기반 시설 90%가 파괴됐고, 어린이 210명을 포함해 민간인 5000여 명이 숨졌다. /타스 연합뉴스

마리우폴은 친러 지역인 크림 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육로로 연결하는 요충지로, 지난달 1일부터 러시아군에 포위돼 집중 공격을 받아 왔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한 달 이상 외부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탓에 식량과 식수가 완전히 떨어졌고,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이 계속돼 민간인 희생이 최소 5000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산부인과 병원과 어린이 대피소까지 포탄이 떨어져 최소 210명 이상의 어린이가 숨졌다. 이들 희생자 중 상당수가 제대로 매장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고 우크라이나 측은 밝혔다. 마리우폴에는 지금도 10만~16만명의 시민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6일 터키 언론과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에 대한 국제적십자사의 인도적 지원을 집요하게 막고 있는데, 이곳에서 벌어진 학살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의 만행은 다른 지역에서도 잇달아 보고되고 있다. 류드밀라 데니소바 우크라이나 의회 인권감독관은 “부차 북쪽에 접한 소도시 호스토멜에서 400명이 넘는 주민이 실종됐다”며 “이들 일부가 러시아군에 살해되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들이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자국군의 민간인 학살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우크라이나 주장은 평화협상을 무산시키려는 술책”이라고 했다. 마리아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도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발견된 거리의 시신 사진은 조작된 것”이라며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정당화하려는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 학살 현장 재연하며 "푸틴, 전쟁 멈춰라" - 6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 앞에서 시민단체 활동가와 주민들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소도시 부차에서 러시아군에 무차별 학살돼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된 민간인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40일 넘게 진행되는 가운데, 집단 학살과 시신 소각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남부 도시 마리우폴 당국자는“러시아가 도시 전체를‘죽음의 수용소’로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 뉴스1

러시아군의 집중 공세가 예고된 돈바스 지역에선 민간인에 대한 대피 경고가 나오고 있다.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주 주지사는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루한스크 지역의 모든 주민은 버스와 열차가 있는 지금 당장 철수하라”고 호소했다. 그는 “지금껏 보아왔듯, 러시아군은 (민간인 대피를 위한) 휴전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며 “언제 또 탈출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총 5만㎢에 달하는 돈바스 지역 중 친러 반군과 러시아군이 장악한 지역은 40% 정도다.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가 나머지 3만㎢도 점령해 돈바스를 완전히 빼앗으려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이번 전쟁의 목표를 ‘돈바스 해방’으로 재천명하고, 북부와 북동부 전선의 침공 부대를 재편성해 동부 돈바스에 집중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미국 CNN은 이날 미군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수도 키이우와 체르니히우를 공략하던 러시아군이 벨라루스와 러시아 영토로 완전히 철수한 것이 확인됐다”며 “이들은 재편성과 정비를 거쳐 돈바스 지역으로 보내질 것”이라고 전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군이 현재 동부 지역 공격에 집중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체를 점령하겠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며 “이 전쟁은 앞으로 몇 달, 몇 년까지 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