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북부 도시 크라마토르스크의 기차역. 미사일 공격 후 현장 모습이다. /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피란민 4000여명이 모여 있던 돈바스 지역 한 기차역이 미사일 공격을 받아 어린이를 포함한 최소 39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러시아군이 대량 살상무기를 사용했다고 밝혔으나, 러시아 측은 공격 사실 자체를 부인하며 우크라이나군의 자작극임을 주장했다.

8일(현지 시각)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우크라이나 국영철도회사는 성명을 내고 러시아군이 도네츠크주 북부 도시인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을 공격해 최소 39명이 사망했고 3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사망자 중에는 어린이 4명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구조 당국이 현장을 수습하는 중이라 앞으로 사상자가 더 나올 가능성도 있다. 올렉산드르 혼체렌코 크라마토르스크 시장은 “팔다리를 잃는 중상 환자가 많아 30~40명의 외과의사가 동시에 수술을 진행 중”이라며 “밀려드는 부상자의 수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당시 역에는 주민 4000여명이 피란 열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고 대부분이 노인과 여성, 어린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러시아군이 돈바스 지역 장악을 선언하고 병력을 집중하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6일 “당장 대피하지 않으면 죽음의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며 긴급 대피령을 내린 바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이날 트위터에 아수라장이 된 역 주변 모습을 사진으로 공개했다. 부상당한 사람들이 거리에 쓰러져 있고 내용물이 다 빠져나온 짐 가방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또 곳곳에는 사망자의 시신이 헝겊으로 덮여져 있고 주변은 핏자국이 선명하다.

기차역에서 사망한 주민들의 시신이 헝겊으로 덮여있다. /AFP 연합뉴스

역 인근에서는 공격에 사용된 미사일 잔해도 발견됐다. 미사일에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라는 러시아어 문구가 적혀있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가 대량 살상 무기인 ‘집속탄’을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나의 폭탄 안에 소형 폭탄 수백 개가 들어있는 형태로, 넓은 지역에서 다수의 인명을 저격할 수 있어 국제법으로 사용이 금지된 무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폭격 당시 역에는 우크라이나 군인이 없었다. 러시아군이 무차별적으로 민간인을 파괴한 것”이라며 “러시아군이 저지르는 악에는 한계가 없다. 이를 처벌하지 않으면 그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수도 키이우를 방문한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도 “이 부당한 전쟁을 피하려는 민간인의 탈출로를 차단하고 인간적 고통을 야기하는 또 다른 시도”라고 비판했다.

기차역 공격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미사일 잔해. /로이터 연합뉴스

다만 러시아 측은 이번 공격 사실을 부인하며 우크라이나의 자작극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을 내고 “우크라이나 측 주장은 도발이며 절대 사실이 아니다.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에 대한 우리 쪽 공격은 없었고 계획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우크라이나가 주민들의 대량 탈출을 막고 이들을 자국군 병력 주둔지 방어를 위한 ‘인간 방패’로 삼으려 한 것”이라며 “역 인근에서 파편이 발견된 ‘토치카-U’ 미사일은 우크라이나군에서만 사용돼온 무기”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