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된 러시아의 침공 위협이 발트해 주변 유럽 국가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추진하고,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이 반(反)러시아 연대에 적극 가담하자 러시아가 “우리 안보에 대한 위해 행위”라며 군사력 증강으로 대응하겠다고 나섰다. 러시아는 특히 발트해에 면한 자국 영토이자 발트 함대의 본거지인 칼리닌그라드에 핵무기까지 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긴장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지역에서 3월 25일 러시아 발트함대 소속 S-400방공미사일 대대가 공중목표물 타격 훈련을 하고 있다./TASS 연합뉴스

아르비다스 아누사우스카스 리투아니아 국방장관은 14일(현지 시각) “러시아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의 자국 영토 칼리닌그라드에 이미 핵무기를 배치해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의 핵무기 배치 상황에 대해 나토 회원국이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그는 “러시아는 이를 (발트해) 주변국에 대한 위협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군사적 압박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음을 경고했다.

전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한다면 러시아는 발트해에서 육군과 해군, 공군을 모두 강화해야 한다”며 “앞으로 핵무기가 없는 발트해에 대해서도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아누사우스카스 장관의 발언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됐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2008년부터 4년간 대통령을 역임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그의 발언은 칼리닌그라드에 재래식 군사력은 물론 핵무기 배치를 대폭 증강해 주변국을 위협할 수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경고로 해석된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 등은 “우크라이나에 이어 발트해에서 나토와 러시아의 안보 이익이 충돌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면 러시아를 제외한 발트해 연안 8국이 모두 나토 국가가 돼 발트해가 사실상 ‘나토의 내해(內海)’가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것이 발트해를 둘러싼 러시아의 안보 이익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송윤혜

발트해는 러시아와 유럽 모두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바다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북해로 나갈 수 있는 통로이자 서유럽과 중요한 무역로다. 반대로 유럽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해상을 통한 세력 확장에 나설 경우,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길목이다.

칼리닌그라드는 이처럼 첨예한 지정학적 이해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본래 독일 영토였지만, 2차 대전 승전국인 소련이 빼앗아 발트 함대의 본거지로 삼았다.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의 절묘한 곳에 위치, 이 두 나라는 물론 다른 발트해 연안국인 독일과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등을 모두 견제할 수 있다. 흑해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과 함께 러시아가 보유한 몇 안 되는 부동항이기도 하다. 칼리닌그라드주(州)의 넓이는 경기도의 약 1.5배인 1만5125㎢에 불과하지만, 그 전략적 중요성은 크림반도 못지않아 ‘러시아의 알래스카’라는 말이 나온다.

칼리닌그라드는 이 지역 안보의 ‘시한 폭탄’이 되어 왔다. 러시아는 고립된 칼리닌그라드의 수비를 위해 1개 군단 규모의 지상군과 미사일 부대, 방공 사단 등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이스칸데르-M(SS-26) 탄도미사일도 대거 배치했다. 이 미사일은 유효 사거리가 500km 이상으로, 폴란드와 발트 3국은 물론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과 핀란드 수도 헬싱키까지 타격 가능하다. 군사 전문 매체 1945는 “칼리닌그라드가 점점 핵무기 섬처럼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포린폴리시 등 외교 전문 매체들은 “러시아와 발트해 주변국 간에 ‘두려움의 상승 작용’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러시아가 칼리닌그라드와 벨라루스를 육로로 연결하는 이른바 ‘수왈키 회랑’을 확보하기 위해 이 두 나라를 침공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이는 스웨덴과 핀란드에도 연쇄적 안보 우려를 증폭시키는 상황이다. 반대로 러시아는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면 칼리닌그라드가 해상 봉쇄돼 발트해에 대한 영향력을 잃을 것으로 보고 군사적 위협을 높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수왈키 회랑을 차지하기 위한 또 한번의 ‘특별 군사작전’ 검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