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 시각)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낙태권 폐지 반대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이 '내 몸에서 낙태금지법을 치워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AP 연합뉴스

임신 6개월까지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49년 만에 뒤집어야 한다는 미 연방대법원 의견서 초안이 유출되면서 미국 사회에 파문이 일고 있다. 진보와 보수 진영 간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일부 대기업들은 낙태 시술을 원하는 직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청바지로 유명한 의류기업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의견서 초안이 유출된 4일 성명을 내고 “낙태가 금지된 주(州)에 사는 직원들이 낙태 시술을 받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가는 데 드는 경비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는 “전 세계 우리 직원 중 58%가 여성”이라며 “낙태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거나 범죄화하는 것은 특히 유색인종 여성들의 복지를 위험에 빠뜨리고 고용 체계를 방해할 것”이라고 했다.

기업들은 당초 오는 6월로 예정됐던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판결을 앞두고 직원들에 낙태 시술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오고 있었다. 애플은 임신 6주 이후 낙태를 엄격히 금지하는 ‘심장박동법’을 시행한 텍사스주 직원들이 ‘원정 낙태’를 떠날 경우 의료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아마존 역시 지난 2일 원정 낙태 경비로 최대 4000달러(약 510만원)를 보조하겠다고 밝혔다. 모빌리티 기업 우버와 리프트는 오클라호마주의 낙태금지법에 의해 직원이 소송을 당할 경우 비용을 전액 부담하겠다고 했다. 오클라호마주는 지난달 낙태를 중범죄로 규정, 최고 10년 징역형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기업들이 낙태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최근 몇 년간 미국에서 기업을 향해 ‘민감한 사회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블랙라이브스매터(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와 ‘1·6 의사당 난입 사태’ 등을 지나오며 기업들은 인종차별에 맞서겠다고 다짐하거나, 특정 정치인에 후원을 끊는 등 (정치적 문제에 대한) 입장을 드러내게 됐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실제로 올해 들어 낙태금지법으로 인한 사업상의 리스크 등을 연구하라고 요청하는 주주들의 제안서가 기업에 쏟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홍보회사 CEO는 “소비자들과 직원들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마지막 저지선 중 하나로 기업에 기대를 걸고 있다”며 “그들은 기업이 이 주제(낙태권)에 대해 주도적으로 대처하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