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6개월까지 여성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뒤집어야 한다는 미국 연방대법원 의견서 초안이 유출돼 진보·보수 진영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대기업들이 낙태 시술을 원하는 직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청바지로 유명한 의류 기업 리바이스는 4일(현지 시각) “낙태를 금지한 주(州)에 사는 직원들이 낙태 시술을 받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데 드는 경비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는 “전 세계 우리 직원 중 58%가 여성”이라며 “낙태를 제한하거나 범죄시하는 것은 특히 유색 인종 여성들의 복지를 위험에 빠뜨리고 고용 체계도 방해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기업들은 오는 6월로 예정된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판결을 앞두고 낙태 시술을 받는 직원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애플은 지난해 임신 6주 이후 낙태를 엄격히 금지하는 ‘심장박동법’을 시행하는 텍사스주 직원들이 ‘원정 낙태’를 떠날 경우 의료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지난 2일 원정 낙태 경비로 최대 4000달러(약 510만원)를 보조하겠다고 밝혔다. 모빌리티 기업 우버와 리프트는 오클라호마주 낙태금지법에 의해 직원이 피소될 경우 소송 비용을 전액 부담하겠다고 했다. 오클라호마주는 지난달 낙태를 중범죄로 규정, 최고 10년 징역형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기업들이 낙태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최근 ‘민감한 사회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하는 분위기가 사회 곳곳으로 확산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블랙 라이브스 매터(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와 ‘1·6 의사당 난입 사태’ 등을 겪으면서 기업들이 인종 차별에 맞서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거나, 특정 정치인에 대한 후원을 끊는 등 (정치적 문제에 대한) 입장을 드러내게 됐다”고 전했다. WP에 따르면 실제로 올 들어 낙태금지법에 따른 사업상 리스크 등을 조사·연구할 것을 요청하는 주주 제안서가 기업에 쏟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홍보회사 최고경영자는 “소비자와 직원들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최후 저지선의 하나로 기업에 기대를 거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