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전장 곳곳에 자국 전사자들을 방치하고 떠난 탓에 우크라이나군과 당국이 대신 시신을 수습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AFP통신은 11일(현지 시각) 러시아군 전사자 시신 수습 작업을 맡은 우크라이나 법의학팀 5명을 동행 취재해 이같이 보도했다. 이들은 마침 몇 주 전 키이우 서쪽 자발리우카 마을에서 전해진 주민들 제보로 러시아군 시신 수색에 나선 상황이었다.
주민들은 부상당한 러시아 병사 한 명이 마을 사람들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후퇴를 앞둔 다른 동료 병사가 그의 목숨을 끊고 사라졌고, 이후 우크라이나 국토방위군이 숨진 병사의 시신을 발견해 묻어줬다고 한다. 이날 우크라이나 법의학팀이 발견한 해당 병사 시신 오른팔에는 러시아군 표식인 흰색 띠가 둘려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수 주 동안 민군 합동으로 키이우 외곽 들판, 숲, 건물 잔해 등에서 러시아군이 남긴 시신을 수습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수습된 시신은 200여구 이상이다. 애초 러시아는 빠른 속도로 키이우를 점령하려다 실패했고, 지난 3월 말 동부로 병력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병사들을 방치하고 떠났을 것이라는 게 우크라이나 측 설명이다.
통상 전사자 시신 수습은 조국을 지키다 희생된 군인에 대한 예우일 뿐만 아니라 군 사기와 직결된 사항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여기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모습이다. 이날 작업을 감독한 우크라이나군의 볼로디미르 리암진 대령은 “러시아 정부는 우리가 수습한 전사자 시신을 돌려받는 데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시신 처리 역시 우크라이나 정부가 결정할 것이고 각각의 시신이 전쟁 범죄의 증거가 되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시신 수습에 동원된 한 우크라이나 병사는 “사망자가 적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시신을 수습하는 일은 국제 인도주의 법칙에 따른 것”이라며 “만약 그들(러시아군)이 마땅한 예우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망자를 존중해 그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러시아군 시신을 수습해 운반 가방에 담은 뒤 이동식 시신안치소인 냉동열차에 보관하고 있다. 다만 위치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자국군 시신이 선전전 등에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 러시아가 공습을 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지난 2월 24일 개전 후 지금까지의 러시아군 전사자 규모를 약 2만6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는 침공 한 달이 흐른 3월 말 1351명이 전사했다고 발표한 뒤 구체적인 인명피해 현황을 밝히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