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80일을 넘어선 가운데 두 나라가 흑해에서 스네이크 아일랜드(즈미이니섬)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BBC가 1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스네이크 아일랜드는 흑해의 전략적 요충지다. 섬 북서쪽에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과 몰도바가 있고, 동쪽에는 크림 반도가 있다. 면적은 0.17㎢ 정도로, 우리나라 독도(0.19㎢·동도와 서도, 부속 도서를 포함)보다 약간 작다. FT는 “작은 바위섬이지만, 군사 기지를 세우면 인근 수백 마일에 걸친 지역의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부터 흑해 함대의 기함(旗艦)인 모스크바함을 투입해 섬을 점령해왔다. 남부 요충지 오데사 공격의 거점, 몰도바의 친러 분리 독립지역 트란스니스트리아로 향하는 길목이라는 전략적 판단에서였다. 한 우크라이나 군사 전문가는 “이곳에 장거리 방공 체계를 구축하면 러시아군은 흑해 북서부와 우크라이나 남부 육해공을 한 번에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달 초 스네이크 아일랜드 상공을 비행하던 러시아군 헬기, 단거리 미사일 시스템을 적재하고 정박한 상륙정을 파괴하는 영상을 공개하는 등 수복 작전을 지속하고 있다. 섬 통제권을 완전히 내주면 주요 생산품인 밀을 수출하는 항로가 사실상 봉쇄되기 때문이다. 이미 러시아는 주요 밀 수출항인 오데사를 틀어막아 우크라이나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키릴로 부다노프 우크라이나 군사정보부장은 “스네이크 아일랜드의 지배자는 우크라이나 남부로 향하는 상선을 언제든 차단할 수 있다”고 FT에 말했다.
스네이크 아일랜드에서 서쪽으로 불과 40여㎞ 떨어진 루마니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러시아가 섬에 지대공미사일을 배치하면 루마니아도 사정권에 들어온다. FT는 “러시아가 섬을 완전히 점령하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회원국 루마니아에 무기와 군대를 배치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고 전했다. 영국 해군 분석가 조너선 벤덤은 BBC에 “러시아가 S-400 미사일 시스템을 섬에 배치하면 전쟁 판도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