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A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사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미국의 안보 전문가가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관련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미국의 안보 전문가이자 책 ‘핵악몽: 늦기전에 세계 구하기(Nuclear Nightmares: Securing the World Before It Is Too Late)’의 저자 조셉 시린시온은 26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WP)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핵 사용과 미국의 대응에 관한 시나리오를 기고했다.

시린시온은 “위기의 확률이 몇 %라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확률이 10%든 40%든 대응방법은 똑같다”며 “핵 사용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사전에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세가 아니다’라고 하는 푸틴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미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군사독트린에 핵무기 선제사용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 21일 우크라이나 전쟁에 보낼 예비군 30만명 동원령을 발표하면서 “우리나라(러시아)의 영토적 온전성이 위협받는다면 우리는 러시아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분명히 우리가 가진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다. 이것은 허세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시린시온은 “미국과 달리 러시아는 핵무기 사용 훈련을 정기적으로 해왔고 재래식 무기 훈련과 함께 진행해왔다”고 했다. 이어 “러시아 군사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전쟁에서 지고 있는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황을 악화시켜 승리한다’는 전략은 다소 모순적이지만 미국의 핵 선제사용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2020년 러시아 국방부가 공개한 핵 추진 순항미사일 ‘9M730 부레베스니크’ 홍보 영상 속 장면. 영상 뒷부분엔 컴퓨터 그래픽만으로 구현된 장면들이 이어져, 위 장면이 실제 부레베스니크 발사 순간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러시아 국방부

그러면서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러시아 핵 사용 시나리오를 4가지로 제시했다.

먼저 러시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 핵무기를 발사해 서방이 물러나도록 하는 과시용 발사를 할 수 있다. 인명 피해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폭발만으로 당사자들의 입장을 바꾸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이 대응할 필요는 없다. 다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러시아의 국제적 고립을 요청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러시아에 강력한 추가 제재를 부과하는 동시에 또다시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할 수 있다. 중국과 인도 또한 러시아와 재빨리 거리를 둘 것이다. 러시아는 효과가 적다고 판단해 이 방법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러시아가 비교적 위력이 약한 핵무기로 우크라이나 군사 표적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다. 이 경우 수많은 사람들이 숨지는 등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러시아는 지상배치 순항 미사일이나 이스칸데르 미사일 등에 10킬로톤의 핵탄두를 탑재해 공격할 수 있다. 이는 TNT 폭약 1만톤에 달하는 폭발을 일으킬 것이지만 핵무기로서는 위력이 약하다. 히로시마를 공격한 핵무기는 15킬로톤이었으며 미국과 러시아의 핵탄두 위력은 대부분 100킬로톤에서 1000킬로톤 사이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폭발력 1킬로톤짜리 소형탄두도 보유하고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미국이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제시한 대응방안에 더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크게 늘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미국이 핵무기를 발사한 러시아 부대를 함께 공격할 수 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11시 무렵, 원폭이 투하돼 생지옥으로 변한 히로시마 미유키바시 거리에 피해 주민들이 헐벗고 충격받은 모습으로 앉아 있다. 이날 오전 8시 15분, 최초의 핵폭탄인 '리틀 보이'가 히로시마 상공 580m 부근에서 폭발했다. /유엔 제공

세 번째 시나리오는 히로시마 공격에 사용된 핵무기의 3~6배에 달하는 ‘고위력’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50~100킬로톤의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수십만명이 숨지고 방사능 낙진 피해가 크게 확산할 것이다. 이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공격할 경우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궤멸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 미국과 나토가 대응할 것이다. 미국과 나토는 정확하고 강력한 재래식 무기로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군과 사령부를 궤멸시킬 충분한 능력이 있다. 이와 함께 대규모 사이버 작전도 함께 진행될 것이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러시아가 나토에 직접 핵 공격을 하는 것이다. 이는 가능성이 가장 낮은 시나리오로 꼽힌다. 러시아의 핵선제 사용 독트린에는 나토에 대한 공격 관련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 경우 러시아가 장거리 미사일 또는 공중 발사 순항 미사일을 통해 중부 유럽 국가에 핵 공격을 할 수 있다. 폭발력이 세 번째 시나리오와 유사할 경우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유럽국이 크게 파괴돼 핵 대응이 촉발될 수 있다. 일부는 핵 억지력 유지를 위해 제한적 핵반격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보다는 다시 러시아가 공격하기 전에 푸틴 대통령과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제거하기 위한 전면 재래식 공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린시온은 “이상 공포스러운 시나리오들이다. 모두들 걱정스럽다면 적절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며 “푸틴이 선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대규모 정치적 대응에 당장 나서야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