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최근 감세 정책을 둘러싼 정부 내 혼선에 대한 책임을 물어 쿼지 콰텡 재무장관을 14일(현지 시각) 전격 경질했다. 지난달 23일 450억파운드(약 70조원) 규모의 감세 정책을 발표한 이후 영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는 등 ‘금융 대란’을 겪은 지 20여 일 만이다. 트러스 총리는 이날 법인세 인상안을 원래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콰텡 장관은 이날 미국 방문 중 급거 귀국, 트러스 총리를 만난 직후 트위터를 통해 “장관직 사임 요구를 받았으며,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내용의 자필 편지를 공개했다. 지난달 6일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지 38일 만이다. 더타임스는 “콰텡 장관은 지난 1970년 취임 30일 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에인 머클라우드 전 장관에 이어 두 번째로 단명한 재무장관이 됐다”고 전했다.
영국 언론은 “콰텡 장관의 퇴진은 트러스 내각의 대표 경제 정책인 감세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콰텡 장관은 법인세율을 현재 19%에서 25%로 올리는 인상안을 백지화하고, 소득세율을 대폭 낮추는 한편, 부동산 취등록세도 절반 수준으로 깎아 주는 것을 골자로 한 ‘미니 예산안’을 추진해 왔다. 감세를 통해 영국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트러스 총리의 소신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줄어드는 세수만큼 정부의 씀씀이를 줄이거나, 다른 세원을 개발하는 등 구체적인 대책 없이 감세안만 발표하자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당장 영국 국채 발행이 급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영국 국채 가격이 급락(금리는 급등)했고, 파운드화 가치도 한때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감세안 추진이 영국 경제에 대한 위기감만 높이는 결과로 돌아오자 야당은 물론 보수당 내에서도 감세 정책을 폐기하라는 압력이 고조됐다. 영국 정부는 지난 3일 감세 정책 패키지(묶음) 중 하나인 고소득자에 대한 감세안을 포기했다.
트러스 총리는 이날 오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관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영국 정부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법인세 인상안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트러스 총리는 “이를 통해 연간 180억파운드(약 29조원)의 추가 세수가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트러스 총리는 이날 신임 재무장관에 제러미 헌트 전 외무장관을 임명했다. 헌트 전 장관은 지난 보수당 대표 선거에서 트러스 총리의 경쟁자인 리시 수낙 전 재무부 장관을 지지했으며, 최근 감세안이 포함된 미니 예산안이 발표된 후 금융 시장이 요동치자 트러스 총리 비판에 앞장서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