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 정책의 실패로 집권 한 달여 만에 벼랑 끝에 몰린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재무장관을 교체하며 위기 돌파에 나섰지만, 총리직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트러스 총리는 지난 14일(현지 시각) 감세안을 둘러싼 정부 내 혼선에 책임을 물어 쿼지 콰텡 재무장관을 임명 38일 만에 전격 경질하고 제러미 헌트 장관을 새로 임명했다.
헌트 신임 재무장관은 15일 영국 BBC 등과 가진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세금은 내려가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오를 수 있다. 공공 지출도 사람들이 바라는 만큼 늘어나진 않을 것”이라며 “모든 정부 부처는 추가적인 효율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헌트 장관의 발언은 감세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트러소노믹스’의 끝을 알리는 신호”라고 전했다.
헌트 재무장관은 “지금 시장이 원하는 것은 안정이다. 지출과 세금 정책 모두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트러스 총리의 방법은 옳지 않았고 그래서 내가 이 자리를 맡게 됐다”고도 했다. 지난 당대표 선거에서 트러스 총리의 경쟁자인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을 지지했던 헌트 신임 재무장관은 외무장관, 보건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베테랑 정치인이다.
보수당 내 반발을 수습하기 위해 반대파였던 헌트 의원을 ‘소방수’로 투입한 트러스 총리는 14일 기자회견에서 “법인세율 동결 계획을 취소하고 예정대로 19%에서 25%로 올린다”며 “(감세안이 포함된) 미니 예산안이 시장 예상보다 너무 빨리, 너무 멀리 갔다”며 처음으로 자신의 정책이 잘못됐음을 인정했다.
지난달 23일 트러스 내각은 소비와 투자 진작을 위한 전방위적 감세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정책 발표 다음 날 파운드화 가치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국채 금리가 치솟는 등 ‘금융 대란’이 일어났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이 감세안에 대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며 이례적으로 경고,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금융시장의 불안은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상으로 이어졌다. 가뜩이나 물가 상승으로 불만에 차 있던 서민들은 분노가 폭발했다. 지난 11~12일 유고브 설문조사에서 보수당 지지율은 23%로 노동당(51%)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작년 12월 ‘파티 게이트’로 불신임 위기에 처했던 보리스 존슨 당시 총리의 지지율(24%)보다 낮은 수치다.
영국 더 타임스는 “콰텡 재무장관을 경질하면서 트러스 총리가 몇 주 정도 시간을 더 얻었지만, 총리실 고위직들조차 트러스가 쫓겨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얘기한다”며 “감세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공약이 사실상 폐기된 상황에서 트러스 총리는 사실상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트러스는 기록적으로 이른 시간에 ‘좀비’가 된 총리”라고 평가했다. 가디언은 “트러스 총리가 실 한 가닥에 매달려 있다”고 표현했고, 데일리메일은 “그녀는,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까”를 신문 헤드라인 제목으로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