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 수낙 영국 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영국 정부가 증세와 긴축을 통해 연간 수십조원의 재정 적자를 줄이겠다는 내용의 새 예산안을 내놨다. 에너지 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을 늘리고, 복지 분야에서 새는 돈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영국은 지난 9월 재정 수입을 늘리거나 반대로 지출을 줄이는 구체적 대책 없이 450억파운드(약 72조원)의 감세 정책을 발표했다가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고 시장 금리가 급등하는 금융 대란을 겪었다.

제러미 헌트 영국 재무장관은 17일(현지 시각) 영국 하원에 출석해 “현재 에너지 업계에 부과되는 횡재세(橫財稅) 세율을 (현행 25%에서) 35%로 10%포인트 올리겠다”고 밝혔다. 또 횡재세 부과 기간도 2028년 3월까지로 2년 3개월 연장하기로 했다. 가동 기간이 오래된 친환경 및 원자력 발전에서 거둔 이익에도 40%의 세금이 붙게 됐다. BBC는 “이를 통해 내년 한 해에만 140억파운드(약 22조3400억원)의 추가 세수가 생길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중산층 이상의 소득세 부담도 늘어난다. 헌트 장관은 “45%의 최고 소득세율을 적용받는 연소득 기준을 15만파운드(약 2억4000만원)에서 12만5000파운드(약 2억원)로 낮추고, 기존 소득세율 구간을 2028년까지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또 실업·빈곤 수당 등에 해당하는 ‘통합급여’ 수급자를 약 60만명 줄이기 위해 취업 알선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부정 복지 수급자를 걸러내는 시스템에도 투자해 복지 지출을 효율화하기로 했다.

영국 정부는 이를 통해 550억파운드(약 88조원)에 달하는 재정을 확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은 “지난 9월 50년 만의 최대 규모 감세안을 내놓은 이후 8주 만에 경제 방향이 180도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영국 정부는 그러나 향후 2년간 교육 분야에는 23억파운드(약 3조6700억원), 의료 체계 개선에는 33억파운드(약 5조2600억원)를 더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또 저소득층과 장애인, 연금 수령자에게는 연간 최대 900파운드(약 143만원)의 생활비 지원을 늘리기로 했다.

헌트 장관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면서 정부 부채를 줄이고, 물가 상승률을 낮추기 위한 예산안”이라고 밝혔다. 앞서 영국 공무원·교사 노조와 공공운수 노조, 간호사 노조 등은 임금 인상과 복지 강화를 요구하며 정부의 긴축 예산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