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독일 컨테이너항의 모습. 팬데믹 때 공급망 병목으로 치솟았던 물류 비용이 이전 수준으로 복귀하고, 각종 글로벌 원자재와 식량 가격도 하락세다. 10월을 고비로 도매 물가가 먼저 꺾이고, 후행 지표인 소비자 물가도 내년 초부터 상승률이 본격적으로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AP 연합뉴스

코로나 팬데믹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겹쳐 세계 경제를 강타했던 최악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정점을 찍고 둔화되기 시작했다는 지표가 속속 나오고 있다. 각국의 강력한 통화 긴축과 이에 따른 수요 위축, 공급망 병목 개선 등이 복합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7일(현지 시각) 최근 글로벌 생산 물가가 꺾이기 시작했으며, 후행 지표인 소비자 물가도 향후 수개월에 걸쳐 상승률이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지난 10월 글로벌 물가상승률은 12.1%를 기록했으나 이후 공장 도매 가격과 물류 비용, 원자재 상품 가격이 모두 하락하면서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는 국면으로 돌아섰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식량가격지수 역시 10월에 전년 동월 대비 1.9% 상승하는 데 그쳐 40%대 상승률을 기록했던 지난해에 비해 큰 폭으로 꺾였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치솟았던 글로벌 해운 등 물류 비용 역시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복귀했다.

영국 경제컨설팅사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브라질과 태국, 칠레 같은 신흥국에서도 물가가 정점을 찍고 하락 중”이라고 분석했다. 유럽 최대국 독일에선 도매 물가가 10월에 전월 대비 4.2% 급락해 1948년 이래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고, 미국도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대비 7.7%로 예상치를 밑도는 등 대부분 G20 국가에서 물가 상승세가 꺾이고 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수석 글로벌 이코노미스트 제니퍼 매커운은 “선진국에선 내년 초부터 향후 약 6개월간 식품·에너지 등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약 3%포인트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28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고강도 코로나19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와 우루무치시 화재 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집회가 함께 진행되면서 시위자들이 거리를 따라 행진하고 있다. 세계 최대 원자재 수요국인 중국의 코로나 시위로 수요 둔화가 우려되면서, 국제유가가 이날 3% 가까이 급락했다. /연합뉴스

특히 중국의 코로나 상황이 세계 물가에 시시각각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중국의 코로나 방역 관련 시위가 확산하자, 28일 국제유가 벤치마크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73달러대로 3% 가까이 급락하며 10개월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의 수요 둔화 전망에 철광석·구리·식용유 등 상품 가격도 국제거래소에서 줄줄이 하락하고 있다.

물가 상승률 하락세가 뚜렷해지며 각국 중앙은행은 올해 이어진 경쟁적인 금리 인상 압박에서 벗어나 긴축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커졌다고 FT는 전망했다. 미 연방준비제도는 4회 연속 이어진 0.75%포인트의 금리 인상 폭을 내달 0.5%포인트 수준으로 완화할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