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도중 1만 명 학살에 가담했던 97세 여성이 무려 79년 만에 죗값을 치르게 됐다. 그는 당시 강제수용소에서 나치 지휘관 비서 겸 타자수로 일하며 대규모 살인을 방관하고 지지한 혐의를 받는다.
20일(현지시각) BBC와 AP통신 등 여러 외신에 따르면, 이날 독일 북부 이체호 법원은 과거 살인 1만505건을 조력하고 살인미수 5건을 저지른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름가르트 푸르히너에게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무려 79년이나 흐른 사건이지만, 독일에서 살인죄와 살인 방조죄는 공소시효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번 유죄 판결이 가능했다. 또 18세였던 범행 시점 나이를 고려해 푸르히너는 소년법정에 섰다.
푸르히너는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슈투트호프 강제수용소에서 파울 베르너 호페 사령관의 비서 겸 타자수로 근무했다. 1939년 나치에 의해 폴란드 그단스키 인근에 세워진 이 수용소는 1945년 폐쇄될 때까지 약 6만5000명의 유대인과 폴란드인이 희생된 장소다.
법원은 “푸르히너는 수용소 내 지휘관 사무실에서 타자수로 일할 당시 수감자 1만505명이 가스실 등에서 잔혹하게 살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서류 작업 처리 등을 통해 조직적 학살을 의도적으로 지지했다”고 했다. 또 푸르히너가 머물던 사무실은 수감자 대기공간이 훤히 보이던 곳이었으며, 그가 근무 중 화장터 연기를 보지 못했을 리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푸르히너는 지난해 공판 직전, 거주하던 양로원을 빠져나와 도주를 시도하다 5일간 구금된 적 있었다. 그러나 이날 재판에서는 과거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을 사과했고 그 시절을 후회한다며 참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 독일은 나치에 소극적으로 가담한 이들에게도 엄격한 잣대로 죄를 묻고 있다. 2011년 법원이 강제수용소 근무자였던 존 뎀야누크에게 직접적 증거 없이 살인 조력 혐의 유죄를 판결한 것이 시작이었다. 최근에는 독일 검찰이 101세 최고령 전범 요셉 슈에츠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그는 베를린 북쪽 작센하우젠 수용소에서 3418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으나, 지금까지 “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