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의 역할 확대 강력하게 지지" - 11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토니 블링컨(오른쪽) 미국 국무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양국 외교·국방장관의 2+2 회담 형식의 미·일 안보협의위원회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과 일본은 11일(현지 시각) 워싱턴 DC에서 외교·국방장관 2+2 회담 형식의 ‘미·일 안보협의위원회’를 열고 “양국의 비전, 우선 사항, 목표가 전례 없이 일치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일 양국이 큰 틀의 국가안보전략과 방위전략 수립부터 유사시 대응 계획과 기지 운용, 신무기 개발까지 모든 측면에서 동맹 간 조율을 강화하며 군사력 통합을 추진한다는 이른바 ‘군사 일체화’를 명문화한 것이다.

이날 공동성명에는 일본의 ‘반격 능력(유사시 적 기지 선제공격 능력) 보유’와 ‘역내 평화·안정 유지를 위한 적극적 역할 확대’를 인정하는 내용도 담겼다. ‘미국과 긴밀한 연계하에 일본의 반격 능력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양자 협력을 심화한다’는 표현도 포함됐다. 2+2 회담 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027년까지 방위비를 두 배로 늘리기로 한 일본의 공약에 박수를 보낸다”며 “일본의 전략은 미국의 국가안보전략과 긴밀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대만 문제에 대한 표현도 강화됐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는 국제사회의 안보와 번영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라는 표현이 새롭게 포함됐다. 오키나와현(縣)에 주둔 중인 미 해병대 병력이 괌으로 이전할 예정인 가운데, 3해병사단 사령부와 제12해병연대를 오키나와에 잔류시킨다는 내용도 담겼다. 특히 제12해병연대는 2025년까지 대함(anti-ship) 미사일과 드론으로 무장해 정찰과 타격이 가능한 제12해병연안연대로 개편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이 임박한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최근 중국군의 매우 도발적인 행위와 ‘뉴 노멀’을 수립하려는 시도가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제12해병연안연대로 개편하는 것에 대해서는 “현재와 미래의 위협 환경에 맞도록 이 새로운 연대를 최첨단 정보·감시·정찰, 대함, 수송 역량으로 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키나와현 요나구니와 대만의 직선거리가 110㎞밖에 되지 않을 만큼 근접해 있기 때문에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비하는 한편 유사시 일본 본토와 대만 사이의 난세이제도(南西諸島) 방어를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된다.

미·일 외교·국방장관은 이날 열린 2+2 안보협의회에서 중국·러시아 위협에 맞서 군사적 통합의 길을 가는 것이 미·일 양국의 일치된 비전이란 점을 어느 때보다 구체적인 표현으로 강조했다. 13일로 예정된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동맹의 업그레이드를 천명했다고 볼 수 있다.

양국 장관은 공동성명에 담긴 ‘전략적 경쟁의 새 시대’란 부제의 항목에서 중국을 “인도·태평양 지역과 그 너머에서 최대의 전략적 도전”이라고 규정했다. “투명성을 결여한 중국의 계속되고 가속화하는 핵무기 증강에 대한 우려를 공유한다”고도 했다.

그 대책으로 양국은 군사적 통합의 길을 제시했다. 공동성명은 초입부터 ‘양국의 새 국가안보전략과 방위전략이 통합된 방식으로 억지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융합되는 것을 인식, (양국의) 장관들이 전략적 경쟁의 새 시대에 승리할 수 있는 현대화된 동맹의 비전을 제시했다’는 문구로 시작했다. ‘융합(convergence)’이란 단어는 2021·2022년 공동성명에 등장하지 않았던 새 표현이다. 전체적으로 공동성명 분량이 이전보다 2~3배 늘어났고, ‘통합(integrate)’이라는 표현이 6번이나 등장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부터 양국이 추진해 온 군사적 통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첫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2021년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안보 정책의 일치를 위한 조율”을 약속했고, 지난해에는 “핵심적 국가 안보 전략 문서들을 통해 동맹의 비전과 우선 사항을 일치시킨다”고 했다. 기시다 정권이 지난해 12월 안보 관련 3대 문서를 개정해 반격 능력 보유를 명시한 것은 이런 ‘로드맵’에 따라 이뤄진 일이었다.

이날 양국은 “발생 가능한 모든 범주의 상황에 통합된 방식으로 대처하기 위한 조율을 더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육·해·공, 우주, 사이버, 전자기 스펙트럼과 다른 영역”을 아우르는 모든 분야의 협력을 강조하며 “우주 공간에서의 공격도 어떤 상황에서는 (미·일 간 상호 방위를 규정한) 미·일 안보 조약 5조를 발동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정보·감시·정찰 능력의 조율을 강화하기 위해 미·일 공동 정보분석조직을 발족시키고, 미·일이 서로 군사기지를 공유하거나 합동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기지 공유 계획의 일환으로 이날 일본은 규슈 가고시마 앞바다의 무인도인 마게시마(馬毛島)에서 미 항모 함재기가 육상 이착륙 훈련(FCLP)을 할 수 있는 활주로와 주기장을 갖춘 기지 건설을 시작했다. 이 기지를 완공하면 현재 남태평양상의 외딴섬 오가사와라제도에서 이착륙 훈련을 하는 미국 함재기들이 중국과 훨씬 가까운 지점에 머물 수 있다. 또 일본 본토와 대만 사이의 난세이제도에서 활동할 해상·항공자위대의 거점도 된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양국은 난세이제도를 포함한 지역에서의 양자 훈련도 강화하기로 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보유한 극초음속 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첨단 소재와 극초음속 실험 등의 공동 연구를 시작하고, “방위 무기의 공동 연구와 개발을 위한 노력”도 심화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