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 도심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주도하는 사법 개혁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수십만 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텔아비브 곳곳과 주요 도로 등을 점거한 가운데, 경찰이 진압 과정에서 물대포와 대테러 활동에 사용하는 섬광 수류탄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반발이 격화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 개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1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섬광 수류탄과 물 대포를 발사, 논란이 커지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 개혁안이 통과되면 의회는 단순 다수결로 대법원 판결을 뒤집을 수 있고, 판사를 임명할 권한까지 갖게 된다. 야당과 수십만명의 시위대는 “배임·뇌물 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는 네타냐후가 사법부를 장악하려고 무리수를 둔다”고 반발하고 있다.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AP 통신에 따르면 이날 이스라엘 경찰은 텔아비브의 주요 고속도로를 봉쇄한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섬광 수류탄과 물 대포를 사용했다. 섬광 수류탄은 폭음과 섬광을 내뿜어 일시적으로 시각과 청각을 마비시키는 무기로 주로 대테러 부대가 테러 집단을 제압할 때 쓴다. 이날 경찰의 과격한 진압으로 귀가 찢어진 남성 등 최소 11명이 부상해 병원에 이송됐다. 경찰은 전국적으로 시위 관련자 50여 명을 체포했다고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전했다.

소셜미디어에 게시된 영상에는 경찰이 한 남성을 제압하며 목을 무릎으로 짓누르는 모습과 도로에 쓰러져 피를 흘리는 남성 등의 모습이 담겼다. 텔아비브의 하샬롬 교차로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영상에선 시위대가 “부끄러운 줄 알라”고 외치자,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섬광 수류탄을 던지는 모습이 포착됐다.

지난달 19일 예루살렘 총리실에서 열린 각료 회의에 참석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로이터 뉴스1

이날 네타냐후 총리의 부인 사라 네타냐후 여사가 찾은 미용실을 시위대가 포위하면서 수십명의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수백명이 미용실을 둘러싸고 “나라가 불타고 있는데, 사라는 머리를 자르고 있다”고 외치는 영상이 올라왔다. 경찰은 몇 시간 뒤 네타냐후 여사를 구출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네타냐후 총리의 예루살렘 자택 근처에서도 늦은 밤까지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 연설을 통해 팔레스타인 정착촌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팔레스타인 주민을 살해한 폭도들을 시위대에 빗대 논란을 일으켰다. 이어서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 장관이 “무정부주의자에게 더 강력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이전까지 평화적으로 진행됐던 시위 양상이 바뀌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2021년 6월 야당 연합에 밀려 실각한 이후, 1년 6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말 극우 성향 정당들과 손을 잡고 재집권에 성공했다. 복귀 2주 만에 대법원을 무력화하는 사법 개혁안을 발표하고, 정부 비판적인 공영 방송국 폐쇄를 추진하는 등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의 재계·학계는 네타냐후의 사법 개혁이 이스라엘의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대니얼 카너먼 등 이스라엘 출신 노벨 수상자 7명은 공개서한을 내고 “정치가 교육·연구의 의제를 설정하는 국가들은 여지없이 과학적 우수성을 잃었다”면서 “권력 분립이 분명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만 과학기술 연구와 고등교육이 번창할 수 있다”고 했다.

아미르 야론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는 사법 개혁이 이스라엘의 신용 등급을 떨어뜨릴 것이라 경고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이스라엘 수출의 54%를 차지하는 테크 기업들이 사법 개혁에 반발해 자국을 탈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클라우드 보안회사 ‘위즈’의 아사프 라파포트 CEO는 “사법 개혁으로 인해 그동안 유치한 투자가 무산될 위기”라면서 “주변의 투자자와 기업인들은 벌써 비밀리에 자금을 해외로 송금하고 있다”고 했다.

국제사회도 네타냐후에 대해 비판적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 독립적인 사법부 위에 구축돼 있다”고 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도 베를린을 방문한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기자회견에서 “우리를 하나로 묶는 가치 중 하나는 사법부의 독립과 같은 헌법적 가치”라고 우려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최근 “사법 개혁은 이스라엘 사회를 산산조각 내고 있다”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사법 개혁이 통과되면 네타냐후 연정은 어디든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고,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고, 수학이나 과학이 아닌 종교만을 가르치는 학교에 지원을 쏟아붓는 등 무제한적인 권한을 갖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