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 시각) 와그너 그룹의 한 병사가 우크라이나 바흐무트 인근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에 동원됐다 사망한 러시아 죄수 용병들의 시신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이들을 호국 영웅으로 예우해야 하는지를 놓고 러시아 사회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26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전사한 용병 니키타 카사트킨(23)의 장례를 놓고 러시아 극동 마을 지레켄이 두 쪽으로 쪼개졌다고 보도했다. 3년 전 카사트킨은 술에 취해 시비가 붙은 남성을 수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지역 당국이 마을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카사트킨의 장례를 치르기를 거부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지역 행정관인 알레나 코코데바는 “마을의 절반은 ‘이제 살인자들을 영웅으로 떠받들어야 하느냐’고 항의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카사트킨은 피로 자신의 죄를 씻었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논란이 커지면서 현지 유튜브 방송에 기자들이 출연해 토론까지 벌였고, 그중 한 명은 “모든 전사자는 죽어서도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월 와그너 그룹 용병들이 매장된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지역의 공동 묘지. /로이터

지난해 와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교도소 수감자를 투입하기 위해, 죄수들에게 6개월간 참전하는 대가로 사면과 금전적 보상을 약속했다. NYT에 따르면 우크라전에 투입됐다 숨진 죄수 용병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러시아 전역에서 이 같은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지역 당국은 장례식에 군 의장대가 참석하는 것을 거부했고, 또 다른 지역은 조문객을 받기 위해 공공장소를 사용하려는 유가족들을 막으며 갈등을 빚었다. NYT는 “특히 작은 동네일수록 용병들이 과거 저질렀던 범죄를 세세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갈등이 극심하다”고 전했다.

로스토프 남서부 지역 출신인 로만 라자루크(32)는 지난 2월 바흐무트 전투에서 전사한 뒤 2차 대전 참전 용사들이 안치된 ‘영웅의 골목’에 묻혔다. 라자루크는 2014년 집에 불을 질러 어머니와 여동생을 숨지게 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라자루크 여동생의 친구는 NYT에 “그들은 살인하고, 도둑질하고, 강간하고 감옥에 가선 또다시 살인을 하러 전쟁터에 나갔다”면서 “도대체 그들은 어떤 영웅인가”라고 분개했다.

지난해 11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개관한 와그너 그룹 본사에서 방문객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로이터

반면, 러시아 교육부는 ‘현대 러시아의 영웅’이라는 애국 교육 수업을 신설하고 일부 학교 벽엔 사망한 죄수 용병을 기리는 명판까지 설치했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연구 중인 러시아 정치철학 교수 그레그 유딘은 “정부는 사망한 용병들의 가족에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면서 “유족 입장에선 범죄자 가족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는 데다, 보상금까지 받을 수 있으므로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일부 유족은 마을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와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고니 프리고진에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1월 이반 사브킨(25)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례에 레크리에이션 센터를 사용하겠다고 지역 당국에 요청했다가 사브킨이 절도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프리고진은 사브킨 유족의 항의를 받고 “와그너 용병의 죽음을 기리지 않는 ‘쓰레기들’을 처리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끌어다 우크라이나에 참전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최근 흑해 휴양지 고랴치클류치 당국이 “인근 공동 묘지에 수백명의 와그너 용병이 매장됐다”면서 매장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하자, 프리고진은 “그럼 시장실에 시신을 쌓아두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