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수사 당국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소속 기자를 간첩 혐의로 체포했다고 WSJ와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 등이 30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중부 도시 예카테린부르크에서 WSJ 모스크바 지국 에반 게르시코비치(31·미국) 특파원을 간첩 혐의로 체포, 구금했다고 밝혔다. FSB는 게르시코비치가 미 당국의 지시로 러시아 군수 산업 단지 기업의 활동에 대한 기밀 정보를 수집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의 혐의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이번 사안은 FSB 소관”이라면서도, “우리가 아는 한 그 기자는 현행범으로 적발됐다”고 밝혔다. 마리야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도 텔레그램을 통해 “월스트리트저널 기자가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저지른 일은 저널리즘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고 말했다. 러시아 현지 매체들은 게르시코비치가 모스크바로 이송, FSB 미결수 구금 시설인 레포르토보 교도소에 수감될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게르시코비치는 2017년 기자 생활을 시작, 모스크바타임스와 AFP통신 모스크바 지국 등을 거쳐 지난해 1월 WSJ에 합류했다. 최근 들어 그는 러시아 정치 및 우크라이나 사태를 주로 취재했다. 지난 28일 송고된 그의 마지막 기사는 서방 제재로 인한 러시아의 경제 침체에 관한 것이었다.
자유유럽방송(RFE) 등에 따르면, 냉전 이후 미국인 기자가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건 게르시코비치가 처음이다. 가디언 등 외신은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최대 20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이날 성명에서 “FSB가 제기한 혐의를 강력히 부인한다”며 “믿음직하고 헌신적인 우리 기자의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게르시코비치 기자의 안전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게르시코비치 및 그의 가족들과 연대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미국은 러시아와 ‘죄수 교환’ 협상을 통해 지난해 12월 여자 프로농구 선수 브리트니 그라이너를 석방시켰다. 하지만 지난 2018년 간첩 혐의로 구금된 미 해병대원 출신 기업 보안 책임자 폴 휠런은 아직 러시아에 구금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