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프랑스국립도서관 특별 전시실에서 일반에 공개된 ‘직지심체요절’을 11일(현지 시각) 관람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문화재청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 서적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직지)’의 원본이 11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의 프랑스국립도서관(BnF) 특별 전시실에서 일반에 공개됐다.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책의 해’ 기념 전시회와 이듬해 1973년 이 도서관에서 열린 ‘동양의 재보(財寶)’전을 통해 공개된 지 무려 50년 만이다.

직지는 1377년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된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우리 손에서 제대로 간수되지 못했다. 본래 상하 2권으로 다수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나, 대부분 소실되고 남아있던 하 권 하나가 1887년부터 1905년 사이에 주(駐)조선 프랑스 공사를 지낸 빅토르 콜랭 드 프랑시에게 팔려 프랑스로 넘어갔다. 이후 1911년 경매에서 앙리 베베르라는 골동품 수집가에게 180프랑(현재 가치 약 11만원)에 다시 팔렸다가 1952년 그의 유언으로 BnF에 기증됐다.

BnF는 12일부터 7월 16일까지 석 달간 열리는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회를 위해 도서관 희귀 도서 수장고 속에 깊숙이 보관되어 있던 직지를 다시 꺼냈다. 직지는 전시 첫 부분인 ‘구텐베르크 이전의 인쇄술’ 부분에 나온 전시품 10여 점 중 하나로, 가로세로 약 70㎝, 높이 20여㎝의 유리 상자 속에 책 중간이 펼쳐진 채로 나왔다. 나탈리 크와이 고서적 담당 큐레이터는 “이 페이지에는 한국인이 (한문을) 쉽게 읽을 수 있게끔 표기한 구결(口訣)이 나오는가 하면, (인쇄가 제대로 안 된 부분을) 붓으로 고친 흔적, 금속이 아닌 나무 활자가 쓰인 부분도 확인되는 매우 흥미로운 페이지”라고 설명했다.

직지는 지난 50년간 우리나라 정부와 여러 문화 단체의 높은 관심에도 쉽사리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구텐베르크의 성경을 비롯, 인쇄 기술과 관련된 희귀 전시품 총 270여 점이 나온 이번 전시회를 위해서는 선뜻 모습을 드러냈다. 로랑스 앙젤 도서관장은 직지 공개 이유에 대해 “(인쇄술의 발전은) 구텐베르크 같은 한 사람의 기술에 의해서가 아닌, 역사적 흐름 안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며 “(그런 관점에서) 구텐베르크 성경에 앞서 한국에서 직지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로랑 에리셰 동양 고문서 책임관도 “인쇄 기술의 역사를 다루는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직지를 빼놓을 수는 없다”고 했다.

전시회장의 안내문은 “직지는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80년 먼저 나온, 금속활자로 인쇄된 가장 오래된 책”이라면서도 “당시 아시아의 인쇄 기술은 유럽보다 앞섰으나, 이 기술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파됐음을 증명하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직지 옆에 특별히 배치된 시청각 자료에는 “아시아와 유럽의 인쇄 기술은 서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는 언급도 있었다. 직지가 현존 최고의 금속활자본임은 맞지만, 그렇다고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판 인쇄술이 갖는 문명사적 가치를 결코 떨어뜨리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읽혔다.

BnF는 이날 한국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직지 공개 특별전 지원 및 학술 협력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앙젤 도서관장은 협약에 서명한 뒤 “BnF는 직지 보유를 통해 인류의 보편적 문화유산 보존에 기여하고 있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인류 공동의 역사로서 직지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직지는 BnF가 보유한 동양 고서적 4만5000여 권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위치에 있다”며 “완벽한 보존을 위해 첨단 기술을 동원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도 했다.

자연스레 “언제쯤 한국에서 직지를 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앙젤 도서관장은 그러나 “직지와 같은 희귀한 고서는 잘 전시하지 않는 편”이라며 “2011년부터 한국의 문화재 관련 기관들과 과학적인 협력을 해왔고, 직지를 고해상도 디지털화 작업도 했다”고 답했다. 사실상 ‘한국으로 반출은 어렵다’는 말로 해석됐다. “한국 전시 계획이 없다는 뜻이냐”는 질문이 뒤이어 나오자 그는 “현재로서는 말씀드릴 게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