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분유랑 부모님 혈압, 당뇨약을 못 구해 걱정입니다. 약이라도 구할 길이 없을까요.”
괌을 강타한 제2호 태풍 ‘마와르’의 영향으로 공항마저 폐쇄돼 꼼짝없이 발이 묶인 3000여명의 한국 관광객들에게 재난 영화급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이 묵는 호텔의 방과 복도가 침수됐고, 단수·단전으로 물, 전기 사용도 순탄하지 않다. 일부 호텔은 음식이 제공되지 않아 마트마다 긴 줄이 섰고, 비상약이나 아기 기저귀, 분유를 구하는 이들은 백방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26일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인 관광객 약 3000명이 괌에 체류하고 있다. 태풍으로 수도와 전기가 끊기고 음식·생필품 등 불편을 겪고 있지만, 안전에 큰 위험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우리 공관에서는 괌 현지 당국과 연락하며 체류 중인 한국인 관광객 수와 상황 등을 파악 중이다. 현재까지 우리 국민의 부상 등 피해 보고는 접수되지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괌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은 5300명 정도인데 태풍 경험이 많아 (대응) 준비가 잘 돼 있다”며 ”24일(현지시각)까지만 해도 외부 이동이 불가능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가능하다고 한다”고 했다.
괌 국제공항은 침수됐고, 항공편은 무더기로 결항된 상태다. 외교부는 태풍이 괌 지역을 점차 벗어나고 있어 공항 운영이 재개될지 살펴볼 방침이다. 괌 당국은 공항 정상화 시점을 오는 6월 1일로 예상한다.
공항 폐쇄로 발이 묶인 데다 열악한 현지 상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관광객들은 괌 여행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괌 여행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면 아이나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간 이들은 음식이나 혈압약, 당뇨약 등 상비약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현지 상점이 문을 많이 닫은 터라 한국인이 운영하는 약국과 현재 영업 중인 마트 정보 등이 커뮤니티에 공유됐다. 이 소식을 접한 이들은 “영사관에서 비상약 정도는 제공해줬으면 좋겠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호텔로 현지인들이 몰리면서 숙박 연장이 어려워지는 상황도 닥쳤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숙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관광객들은 호텔 이름을 언급하며 “창문 날아가도 천장이 무너지고 물이 새도 좋다. 그런데 숙박 연장을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어렵게 숙박 연장을 해도 침수된 호텔에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기는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일부 여행객은 객실이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돼 연회장에서 바닥에 수건을 깔고 밤을 새운 것으로 전해졌다.
괌 대부분 지역에 단수, 단전이 일어난 탓에 일부 여행객들은 비가 오면 빗물을 받아 사용한다고 한다. 단수, 단전은 복구됐다가도 일시적으로 다시 문제가 생기는 등 불안정한 상태다. 한 여행객들은 커뮤니티를 통해 “호텔에 고인 물로 변기물을 채웠다” “물을 미리 받아놨지만 흙탕물이라 세수도 못한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호텔엔 컴플레인이 쏟아지고 있다. 괌 호텔에 근무한다고 밝힌 이는 글에서 “이번 태풍으로 인해 즐거운 여행이 한편의 재난 영화가 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이고 호텔 직원으로서 평소의 서비스를 온전히 제공 드리지 못해 고객 여러분께 죄송하다”면서도 “지금과 같이 섬 전체가 단수될 만큼의 극한의 상황에서 해드릴 수 있는 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뿐”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와중에 괌 여행을 계획 중인 이들이 여행 커뮤니티에 ‘일정 취소 여부’에 대해 조언을 구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괌에 체류 중인 것으로 보이는 네티즌은 괌 여행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귀국도 못 하고 먹을 것도, 잘 곳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행여 타국에서 아프기라도 할까 봐 아이나 어르신이 있으면 걱정인 사람들 앞에서 ‘괌 일정 취소할까요? 질문은 이기적이고 몰상식하다”고 호소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괌 공항당국은 현지 공항을 오는 30일 재개하는 것을 목표로 작업 중이라는 입장을 한국 공관 측에 전달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26일 기자들과 만나 “김인국 주 하갓냐 출장소장이 공항청장과 어제 면담했다”며 “(태풍으로) 침수된 이후 활주로 작업 때문에 재개가 늦는데 최대한 빨리 공항 재개를 위한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당국은 교민단체, 여행사 등과 긴급 지원방안을 협의 중이다. 현장 통신 사정이 열악해 민원전화 연결이 잘되지 않는 사례도 있어 당국은 비상수단을 찾고 있다. 통신사와 협의해 관광객들의 로밍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SMS) 공지를 하는 방안 등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이 관계자는 “(관광객 가운데)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안내 중이며, 괌 관광청과 협조하에 병원 교통비를 제공할 예정”이라며 “교민단체와 협조하에 임시대피소 마련을 협의 중이며, 자원봉사자들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