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국조(國鳥) 키위(왼쪽)와 중국의 국보로 불리는 판다. 국가 간 관계 강화를 위한 ‘동물 외교’에 활용된 동물들이 수난을 겪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위키피디아·EBS

몸길이가 35㎝에 불과한 날지 못하는 새 ‘키위’ 때문에 동맹 미국과 뉴질랜드가 낯을 붉혔다. 뉴질랜드가 국조(國鳥)로 끔찍이 아끼는 이 새를 미국 동물원 관람객들이 쓰다듬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다. 20세기 이후 국가 간 관계 구축과 개선 수단으로 즐겨 활용돼온 ‘동물 외교’가 효력이 다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동물원이 진행한 ‘키위와의 만남’ 프로그램 중단 사연을 전했다. 동물원은 사육 중인 키위 ‘파오라’를 관객들이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했다. 이 장면이 소셜미디어에 공개되자 “예민한 습성의 키위 목숨을 위협하는 행동”이라며 뉴질랜드인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크리스 힙킨스 총리까지 나서 프로그램 전면 수정을 요청했다. 동물원은 23일(현지 시각) 사과 성명을 내고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뉴질랜드는 지난 1968년 키스 홀리오크 총독이 미국에 키위 두 마리를 선물한 것을 시초로 수교국 동물원에 이 새를 보내는 ‘키위 외교’를 진행해 왔다. ‘파오라’는 지난 2010년 워싱턴 동물원에 보내진 키위 한 쌍으로부터 태어났다. 양국 관계를 돈독하게 다지려 보낸 선물이 오히려 외교 분쟁을 유발한 셈이다.

뉴질랜드의 국조인 키위새. /마이애미 동물원

동물은 외교 강화 수단으로 오랫동안 활용돼 왔다. 호주는 2015년 독립 60주년을 맞은 싱가포르에 코알라 네 마리를 장기 임대 형식으로 선물했다. 인도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도움을 받아 70여 년 전 자국에서 자취를 감춘 치타를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해 작년과 올해 총 20마리를 들여왔다.

하지만 최근 동물 외교가 삐걱거리고 있다는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원조 격인 중국의 판다 외교가 특히 논란이다. 2003년 중국에서 테네시주 멤피스 동물원으로 건너온 판다 한 쌍 중 수컷 ‘러러’가 올해 2월 폐사하고, 홀로 남은 암컷 ‘야야’가 지난달 중국으로 돌아갔다. 앞서 멤피스 동물원의 판다들이 초췌한 모습을 한 동영상이 공개되자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당장 고향으로 보내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작년 11월에는 중국이 대만에 기증한 수컷 ‘퇀퇀’이 뇌질환으로, 지난달에는 태국 치앙마이 동물원으로 보낸 암컷 ‘린후이’가 숨지는 등 판다 폐사 소식이 들려왔다. 부검 결과 ‘린후이’의 사인은 고령에 따른 노쇠화로 판명 났다. 그러나 오는 10월까지로 예정된 20년 임대 기간이 종료되기 전에 돌연사했다는 이유로 관리 책임이 있는 태국 측이 1500만 바트(약 5억7400만원)의 보상금을 물어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판다 외교 무용론’이 일고 있다.

중국은 판다를 임대 형식으로 외국에 보내는데, 해당 국가는 연 100만달러(약 14억원)의 임차료를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2년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 방중을 계기로 중국이 미국에 판다 한 쌍을 보내면서 주목받은 판다 외교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도 동물 외교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따오기 한 쌍을 기증받은 뒤 경남 창녕 우포늪에서 순조롭게 증식 중이다. 반면 한국·러시아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2011년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총리가 선물한 시베리아 호랑이 암수 한 쌍 중 수컷이 2013년 사육사를 공격해 숨지게 했다.

동물은 과거 정부에서 남북관계 선전에 활용됐지만 최근엔 빛이 바랬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진돗개·풍산개 한 쌍을 주고받았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때도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풍산개 한 쌍을 선물받아 퇴임 뒤 사저로 데려갔지만 작년 11월 돌연 반납 의사를 밝히면서 ‘파양 논란’이 불거졌다. 풍산개들은 광주 우치동물원으로 옮겨졌다.

광주 북구 생용동 우치공원 동물원에서 풍산개 암컷 '곰이'와 수컷 '송강'이가 산책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에서 동물 외교는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외교 수단으로 사용되는 동물이라면, 특정국에서만 서식하는 동물일 텐데 옮겨지는 국가가 적합한 서식 환경이 아닐 수 있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장을 지낸 어경연 세명대 동물바이오헬스학과 교수는 “동물 외교의 순기능도 있는 만큼 동물 복지도 세심하게 감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