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 올드타운에 위치한 애덤 스미스 동상. /최아리 특파원

“애덤 스미스 스카프 어떠세요? 애덤 스미스 테디베어(곰인형)도 인기가 많고요.”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찾아간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대 곳곳에는 ‘애덤 스미스를 탐색하다(Explore Adam Smith)’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애덤 스미스 경영대’ 건물 안에 있는 그의 석상을 보러 관광객들이 오갔고, 학교 내 기념품숍에서는 그의 얼굴이 그려진 에코백·수첩·볼펜 등을 판매 중이다. 직원 크리스티(25)는 “평소보다 요즘 방문자가 두 배 넘게 늘어난 것 같다”며 웃었다. 교내 서점의 특별 코너는 다른 경제학 책을 치우고, 8월까지 ‘애덤 스미스 스페셜’로 운영된다. 글래스고대는 지난 4월 ‘애덤 스미스 300주년 기념 체크’까지 만들었다. ‘그가 (무역을 위해) 배가 드나드는 모습을 흡족스럽게 바라보았을 바다’(글래스고대)의 푸른색을 주(主)색상으로 삼았다.

스미스가 오는 5일로 탄생 300주년을 맞으면서 그가 주로 활동한 스코틀랜드 및 영국 일대에 ‘애덤 스미스 열풍’이 불고 있다. 스미스의 정확한 생일은 알려져 있지 않아, 경제학계 등은 기록에 남은 그의 세례일(1723년 6월 5일)을 생일로 삼아 기리고 있다. 1451년 세워진 글래스고대는 제임스 와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강의한 학교로도 유명하다. 스미스는 14세에 이 대학에 입학, 교수로 재직하고 총장까지 지냈다. 생전 가장 행복하고 유용한 시기로 꼽힌다.

대학 곳곳은 스미스를 기념하면서 가장 유명한 책 ‘국부론’에 적힌 ‘보이지 않는 손’, 그리고 이 말이 상징하는 자유 시장 경제를 기리는 축제장으로 변해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로 자유와 권위주의 진영이 쪼개지고 세계 패권을 놓고 미·중이 대립하는 때에 그가 평생 탐구한 자유 시장과 무역의 가치는 유용할까. 교수와 학생들이 교정 곳곳에서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 보였다. AI(인공지능)가 떠오르는 시대를 맞아 그가 ‘의도치 않아도,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다’던 인간의 이기심은 그 정의가 어떻게 바뀔까. ‘애덤 스미스 행사 주간’인 오는 5~10일을 맞아 글래스고대에선 이런 화두에 대해 세계 석학들이 머리를 맞댈 예정이다. 기타 고피나트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등의 공개 강연이 마련됐다. 학생·일반인 등이 참여할 수 있는 각종 토론회와 심포지엄, 워크숍도 열린다.

존 핀치 애덤 스미스 비지니스 스쿨 학장./최아리 특파원

18세기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에게 사람들이 여전히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래스고대에서 만난 존 핀치 경영대 학장은 “많은 이들이 스미스를 시장 경제, 자유 경쟁의 옹호자로만 생각하지만 그에 대해 알아갈수록 실은 시장을 뒷받침하는 윤리와 제도에 큰 관심을 가진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빈부 격차 등 자본주의의 부작용이 부각되는 시기에 스미스의 이런 사상이 더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스미스가 살아 있다면 어디에 투자하라고 조언했을 것 같은지를 묻자 지체하지 않고 “교육, 기후, 지속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스미스가 저서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던 ‘공공의 이익’에 더 주목했을 것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오늘날 AI를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핀치 학장은 “스미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강의를 필기하는 행위도 막을 정도로 기록의 축적을 극히 싫어했기 때문에 (축적된 데이터에 기반한) AI를 부정적으로 봤을 것”이라면서도 “자동화 측면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고 했다.

애덤 스미스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얀탄 고살(왼쪽) 글래스고대 정치경제학과 교수와 교내 서점에 마련된 애덤 스미스 특별 코너/최아리 특파원

이 학교 정치경제학과 사얀탄 고살 교수(애덤 스미스 석좌교수)는 “스미스는 ‘국부론’에서는 경제적 이익, ‘도덕감정론’에서는 감정과 윤리에 대해 각각 이야기했다”며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포퓰리즘, 인종차별주의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지금 상황을 스미스의 틀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예컨대 방글라데시가 겪는 홍수와 가뭄 등 기후변화 위기는 선진 산업 국가들이 대규모로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결과일 가능성이 있는데, 이 문제를 ‘보이지 않는 손을 고장 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란 관점으로 접근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글래스고대 회계학과 안대승 교수는 “과거 교회가 하던 일을 지금은 국가가 맡고 있고 코로나를 지나며 정부가 점점 커지고 있는데, ‘작은 정부’를 선호하던 스미스가 살아 있다면 국가의 역할 변화에 주목하고 고민할 것 같다”고 했다.

글래스고대뿐 아니라,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스미스를 기리는 행사가 예정돼 있다. 글래스고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인 에든버러는 스미스가 생을 마감한 도시인데 그가 마지막으로 거주했던 곳이 학술 연구소로 바뀌었다. 300주년을 기념해 6월에 두 차례 진행하는 에든버러 특별 투어 프로그램 중 하나는 벌써 마감됐다. 에든버러 관광센터에서 일하는 루크(27)씨는 “스미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묻는 관광객들이 갑자기 많이 늘었다”고 했다. 오는 8월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세계 3대 예술 축제 ‘프린지 페스티벌’은 흥이 넘쳐나는 공연 예술 축제인데, 올해는 엄숙하게만 여겨졌던 경제학 교수들이 스미스 관련 강연을 대거 선보일 예정이다.

에딘버러에 있는 애덤 스미스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인 팬뮤어하우스(왼쪽)와 지난 달 29일(현지시각) 관광객들이 애덤 스미스 동상 뒤에 서서 가이드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최아리 특파원

에든버러에서 다시 북쪽으로 차로 1시간 걸리는 항구 도시 커콜디는 애덤 스미스가 태어난 소도시다. 이곳에선 ‘애덤 스미스 글로벌 재단’이 주최하는 공개 강연 등 각종 행사가 연중 내내 열리고 있다. 지난달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부 장관이 토크쇼 참석을 위해 다녀갔고, 이달에는 애덤 스미스가 자주 거닐었던 것으로 알려진 ‘하이 스트리트’ 인근의 어머니 집 정원이 대중에 첫 공개된다. 재단 측이 부지를 매입하면서 이뤄진 일이다.

2023년 6월 5일로 애덤 스미스 탄생 300주년을 맞는다. 애덤 스미스가 14살에 입학해 총장까지 지낸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 곳곳은 스미스를 기념하면서 가장 유명한 책 ‘국부론’에 적힌 ‘보이지 않는 손’, 그리고 이 말이 상징하는 자유 시장 경제를 기리는 축제장으로 변해 있었다. /최아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