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손주의 댐 폭발로 비버가 집을 잃고 배회하고 있다며 안톤 게라셴코 우크라이나 내무장관 고문이 올린 영상. /트위터

러시아 점령지인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州)의 댐이 폭파하면서 홍수 경보가 발령된 가운데, 인근 지역 주민은 물론 동물들까지 갈 곳을 잃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이번 댐 파괴 배후로 서로를 지목하고 나섰다.

6일(현지 시각) 안톤 게라셴코 우크라이나 내무장관 고문은 트위터에 “동물들도 러시아가 일으킨 생태 재앙의 피해자”라며 헤르손주 드니프로강의 카호우카 댐 폭파 여파가 담긴 영상 여러 개를 공유했다. 영상을 보면, 비버 한 마리가 갈 곳을 잃은 채 홍수가 지나간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털이 홀딱 젖은 사슴 한 마리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고, 개 한 마리는 물에 빠진 채 얼굴만 겨우 내밀고 있다 구조됐다. 집 한 채가 통째로 둥둥 떠내려가는 모습도 찍혔다.

이외에도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는 주민들이 피해를 전하는 사진 및 영상이 잇따랐다. 한 영상에는 백조가 물에 잠긴 시청 앞 광장을 유영하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주민들은 배를 타고 흙탕물에 빠진 반려견 등을 구하는 데 여념 없었다. 노인 한 명이 물이 가득 들어찬 집 내부에서 강아지 두 마리를 양손에 각각 들고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도 눈길을 끌었다.

댐 폭발로 집 한 채가 둥둥 떠내려가고 있다. /트위터
물에 홀딱 젖어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고 있는 사슴. /트위터

독일 DPA통신은 카호우카 마을의 동물원이 완전히 침수되면서 수백마리 동물이 떼죽음을 당한 것 같다고 전했다. 카즈코바 디브로바 동물원 소유주 올레나 나우로즈카는 “동물원이 완전히 잠겨 원숭이, 당나귀, 조랑말을 포함해 300마리로 추산되는 동물이 모두 죽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게라셴코 고문은 이번 댐 폭발이 러시아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게라셴코 고문은 “댐 파괴는 러시아의 초토화 전술이자 대량 학살”이라며 “수만명의 사람이 삶의 터전을 잃고 강제로 피신했다. 또 수천마리의 동물, 새, 물고기, 식물이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체계적으로 파괴하고 있다”며 “푸틴의 목표는 우크라이나를 살기 어려운 국가로 만들어 우리가 항복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생명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것은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적인 위협”이라고 했다.

카호우카 댐 폭발로 인근 마을이 침수됐다. /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남부 사령부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진격을 막으려) 일부러 댐을 폭파했다”고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러시아군을 ‘테러리스트’라고 지칭하며 “이번 댐 파괴는 철저하게 의도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댐 파괴의 책임이 우크라이나에 있다며 “그들이 포격으로 댐 상부를 파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이번에 파괴된 카호우카 댐은 높이 30m, 길이 약 500m 규모다. 이 댐으로 형성된 저수지 길이와 폭은 각각 240㎞, 23㎞로 저수량이 182억㎥에 달한다. 한국 소양강댐(약 29억㎥) 저수량의 6배가 넘는 양이다.

우크라이나 남부 드니프로강을 가로지르는 카호우카댐이 러시아군에 의해 폭파됐다고 6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군이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