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 시각)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그는 미 핵무기 정보를 비롯한 다수의 기밀문서를 퇴임 후 사저로 반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오늘 우리는 미국 역사상 가장 사악하고 극악한 권력 남용을 목격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 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연방 법원의 기소 인부 절차에 출석해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직에서 퇴임하면서 국가 기밀문서를 사저로 대거 빼돌린 혐의로 지난 8일 기소됐다. 트럼프는 이 밖에도 ‘성폭력 입막음’과 관련한 혐의로 뉴욕주 맨해튼 지방 검찰에 지난 3월 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내년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현재 공화당 대선 후보 중 과반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트럼프는 이대로 가면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입막음 관련 본재판은 내년 3월로 예정돼 있고, 문서 유출 건의 재판일은 미정이다. 그런데 기소가 되고, 나아가 유죄 확정까지 될 경우 대통령 선거나 대통령직 수행엔 문제가 없을까. 관련 궁금증을 5문답으로 풀었다.

13일(현지 시각) 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연방법원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에서 둘째)이 변호인들과 함께 출석한 모습을 담은 스케치. 사진 촬영이 금지된 법정 내 삽화가로 유명한 제인 로젠버그가 그렸다. 이날 트럼프는 국가 기밀 문서를 사저로 빼돌렸다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무죄를 주장했다. 트럼프는 지난 3월 ‘성추문 입막음’ 혐의로 맨해튼 지방검찰로부터도 기소돼 내년 대선 일정과 관련한 법적 변수가 커졌다. /로이터 연합뉴스

◇Q1. 본재판은 왜 이렇게 늦게 열리나

연방 검찰과 지검에 각각 기소된 트럼프는 동시에 진행될 재판 두 건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재판 날짜가 내년 3월 25일이라고 발표된 맨해튼 지검 건은 기소하고 1년이 지나서야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이 된다. 한국과 비교하면 ‘거북이 속도’나 다름없어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2017년 4월 17일 뇌물·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뒤 36일 만에 첫 공판이 열렸고 354일 만에 1심 결과가 나왔다. 이와 관련, 뉴욕의 한 현직 판사는 본지에 “미국에선 변호인단이 재판 절차와 관련한 이의 제기 등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중죄로 기소되면 배심 재판까지 1년 이상 걸리는 것은 보통”이라면서 “대신 재판이 시작되면 매일 재판을 열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빨리 진행된다”고 했다. 미 언론들은 통상적인 재판 진행 속도를 감안할 때 대선 전까지 재판이 마무리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가 13일(현지 시각) 그의 생일을 축하하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다음날인 14일 77번째 생일을 맞는다.

◇Q2. 재판이 지연되면 트럼프에게 유리한가

미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법정 공방을 지연시키려 (트럼프의) 법률팀이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측은 기소로 인한 집권층 결집으로 이미 지지율 상승 효과의 ‘맛’을 본 만큼, 판결이 빨리 나와봤자 유리할 게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트럼프 측은) 선거에 임박해 재판 문제가 화제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로이터)는 분석도 나온다.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후에도 대선 유세와 재판이 얽히면 이미지 악화로 본선에서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내년 7~8월 전당대회를 통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한다.

◇Q3. 재판 중이거나 유죄를 받아도 대통령 출마가 가능한가

가능하다. 미 헌법에 따른 대선 출마 조건은 태생적 미국 시민, 35세 이상, 미국 거주 기간 최단 14년 등 셋뿐이다. 범죄자가 대선에 출마한 전례도 있다. 허무맹랑한 종말론을 펼쳤던 린든 라루시(LaRouche)는 1988년 지지자들에게 3000만달러 이상을 빌린 뒤 갚지 않았다는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돼 5년간 수감 생활을 했음에도 총 8번 대선에 나갔다. 심지어 복역 중이던 1992년에도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

트럼프의 대선 기로가 사법 절차 때문에 중단될 수 있는 상황은 한 개뿐이다. 그가 ‘반역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을 경우다. 미 수정헌법 14조가 “반란이나 반역에 연루된 자는 상·하원 3분의 2 찬성 없이는 공직을 가질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사건에 트럼프가 연루됐다는 사실이 입증돼 반역죄로 처벌받으면 대통령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외의 혐의에 대해선 유죄 확정이 나더라도 출마나 대통령직 수행에 문제가 없다.

지난 9일(현지 시각) 이번 사건을 수사한 잭 스미스 특검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소 내용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Q4.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기소될 수 있나

미 헌법은 현직 대통령이 기소될 수 있는지에 대해 정해두지 않았다. 사례가 없기 때문에 판단이 더 어렵다. 미 타임지는 “오랫동안 논쟁이 있었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이 벌어진 닉슨 정부 시절 법무부의 의견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한국 역시 내란이나 외환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현직 대통령을 기소할 수 없게 돼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탄핵 확정 이후 기소됐다.

◇Q5. 대통령 당선 후 징역형이 확정되면 구속될 수도 있나

문서 유출과 관련, 트럼프는 방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징역 10년도 가능한 사안이다. 현직 대통령을 수감 가능한지, 교도소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선 그 어느 법에도 명시돼 있지 않다. 다만 대통령이 돼도 이미 기소돼 진행 중이던 재판이 중단되거나 절차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한편에선 대통령에게 사면권이 있기 때문에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경우 ‘셀프 사면’을 할 수 있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