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미국 역사상 가장 사악하고 극악한 권력 남용을 목격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 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연방 법원의 기소 인부 절차에 출석해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직에서 퇴임하면서 국가 기밀문서를 사저로 대거 빼돌린 혐의로 지난 8일 기소됐다. 트럼프는 이 밖에도 ‘성폭력 입막음’과 관련한 혐의로 뉴욕주 맨해튼 지방 검찰에 지난 3월 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내년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현재 공화당 대선 후보 중 과반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트럼프는 이대로 가면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입막음 관련 본재판은 내년 3월로 예정돼 있고, 문서 유출 건의 재판일은 미정이다. 그런데 기소가 되고, 나아가 유죄 확정까지 될 경우 대통령 선거나 대통령직 수행엔 문제가 없을까. 관련 궁금증을 5문답으로 풀었다.
◇Q1. 본재판은 왜 이렇게 늦게 열리나
연방 검찰과 지검에 각각 기소된 트럼프는 동시에 진행될 재판 두 건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재판 날짜가 내년 3월 25일이라고 발표된 맨해튼 지검 건은 기소하고 1년이 지나서야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이 된다. 한국과 비교하면 ‘거북이 속도’나 다름없어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2017년 4월 17일 뇌물·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뒤 36일 만에 첫 공판이 열렸고 354일 만에 1심 결과가 나왔다. 이와 관련, 뉴욕의 한 현직 판사는 본지에 “미국에선 변호인단이 재판 절차와 관련한 이의 제기 등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중죄로 기소되면 배심 재판까지 1년 이상 걸리는 것은 보통”이라면서 “대신 재판이 시작되면 매일 재판을 열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빨리 진행된다”고 했다. 미 언론들은 통상적인 재판 진행 속도를 감안할 때 대선 전까지 재판이 마무리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Q2. 재판이 지연되면 트럼프에게 유리한가
미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법정 공방을 지연시키려 (트럼프의) 법률팀이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측은 기소로 인한 집권층 결집으로 이미 지지율 상승 효과의 ‘맛’을 본 만큼, 판결이 빨리 나와봤자 유리할 게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트럼프 측은) 선거에 임박해 재판 문제가 화제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로이터)는 분석도 나온다.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후에도 대선 유세와 재판이 얽히면 이미지 악화로 본선에서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내년 7~8월 전당대회를 통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한다.
◇Q3. 재판 중이거나 유죄를 받아도 대통령 출마가 가능한가
가능하다. 미 헌법에 따른 대선 출마 조건은 태생적 미국 시민, 35세 이상, 미국 거주 기간 최단 14년 등 셋뿐이다. 범죄자가 대선에 출마한 전례도 있다. 허무맹랑한 종말론을 펼쳤던 린든 라루시(LaRouche)는 1988년 지지자들에게 3000만달러 이상을 빌린 뒤 갚지 않았다는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돼 5년간 수감 생활을 했음에도 총 8번 대선에 나갔다. 심지어 복역 중이던 1992년에도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
트럼프의 대선 기로가 사법 절차 때문에 중단될 수 있는 상황은 한 개뿐이다. 그가 ‘반역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을 경우다. 미 수정헌법 14조가 “반란이나 반역에 연루된 자는 상·하원 3분의 2 찬성 없이는 공직을 가질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사건에 트럼프가 연루됐다는 사실이 입증돼 반역죄로 처벌받으면 대통령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외의 혐의에 대해선 유죄 확정이 나더라도 출마나 대통령직 수행에 문제가 없다.
◇Q4.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기소될 수 있나
미 헌법은 현직 대통령이 기소될 수 있는지에 대해 정해두지 않았다. 사례가 없기 때문에 판단이 더 어렵다. 미 타임지는 “오랫동안 논쟁이 있었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이 벌어진 닉슨 정부 시절 법무부의 의견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한국 역시 내란이나 외환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현직 대통령을 기소할 수 없게 돼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탄핵 확정 이후 기소됐다.
◇Q5. 대통령 당선 후 징역형이 확정되면 구속될 수도 있나
문서 유출과 관련, 트럼프는 방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징역 10년도 가능한 사안이다. 현직 대통령을 수감 가능한지, 교도소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선 그 어느 법에도 명시돼 있지 않다. 다만 대통령이 돼도 이미 기소돼 진행 중이던 재판이 중단되거나 절차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한편에선 대통령에게 사면권이 있기 때문에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경우 ‘셀프 사면’을 할 수 있다는 설도 있다.